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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깊이보기] 'HDTV문학관' 아직 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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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KBS HDTV문학관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극본 유현미.연출 이민홍)의 시사회가 열렸다.

극장에서 TV드라마 시사회가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땀구멍까지 보인다는 고화질 HD화면에, 국내 처음으로 드라마에서 돌비 서라운드 음향을 5.1채널로 담아냈다는 강점을 십분 살리기 위해서다.

한국방송 76주년, 공사창립 30주년을 맞아 KBS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총 5억1천만원을 들여 제작했다. 가상의 섬 미도를 배경으로 개발과 환경 보존이라는 첨예한 문제를, 한 여인을 놓고 갈등했던 두 남자의 어깨에 각각 지워놓았다.

충남 안면도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줄거리를 압축한 도입부 영상은 인상적이었다. 솔잎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과 검푸른 파도 소리가 상쾌했고 귀 뒤에서 들려오는 갈매기 울음은 바닷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물에 비친 파란 하늘, 마을 어귀 굿판의 원색 향연, 토박이 이섭이 살고 있는 집모습 등이 그야말로 사진처럼 선명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드라마 자체보다는 진보된 기술을 너무 의식한 것 같다. 변호사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형식이었던 박범신씨의 동명 소설을 각색하면서 주인공들의 내면을 그려내는 과정은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는 법정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아하, 그랬구나"보다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나"하는 의문을 주기 때문이다. 개발과 환경 보존이라는 문제는 어느새 뒤로 밀리고, 대신 앞세운 두 남자의 갈등 역시 속시원하게 풀리지 않는다.

또 주인공이 낫을 들고 호텔 현장을 덮치는 장면에서는 앞뒤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차를 타고 가는 경훈을 지나쳐간 이섭이 어떻게 아내 미현과 경훈이 만나는 방을 바로 찾아갔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가난한 어촌의 아이들이 우정을 나누는 10여년 전 장면에서 화사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도 리얼리티를 떨어뜨렸다.

기존 카메라를 들고 헬리콥터에서 찍은 안면도 일대의 원경은 화질이 너무 떨어져 역설적으로 HD카메라의 선명도를 확인시켜 주었다.

1980년 김동리의 '을화'로 시작한 KBS 'TV문학관'은 텍스트를 아름다운 영상미로 옮겨왔다. 이번 시도에서 미흡한 점은 오는 4월 방영되는 두번째 HD문학관에서 상당부분 보완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작품은 3월 2일 밤 12시 KBS-2TV에서 방영된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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