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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기 맞은 종교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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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종교계에 있어서 지난1년 동안 재기된 가장 큰 문제는 교세확장과 함께 대 사회적 관심이다.
특히 불교계는 태고종의 기독교 측에서도 역시 교단이 사회에 대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반성의 소리가 높았다.
불교계의 경우, 한국불교 태고종의 태종은 전체 종교계를 통해 보더라도 금년에 있었던 최대의 사건이 될만한 일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거의 20년간에 걸친 비구·대처의 분규가 일단 종식됨을 의미할 뿐 아니라 종래의 불교계 판도가 뒤바뀌게 되고 또 무력한 상태에서 허탈감에 빠져 있는 한국불교에 구체적인 각성을 요구한 것이다.
태고종이 지난 5월 발족할 즈음에는 불과 3개 사찰 승려 2백50명. 그런데 최근에 집계된 바에 의하면 1천61개 사찰에 2천3백4명의 승려를 확보함으로써 교세가 전례 없는 급증을 보였다. 물론 태고종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이고 대표적 불교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으로부터 분종해 독립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제까지 비구 중심의 통합종단에 합류하기를 거부해온 대처승 중심의 조계종 승려들이 미등록 상태의 무수한 사설 사암을 규합해 이같이 큰 종단으로 이룩해 놓은 것이다.
태고종은 수개월만에 숫자상으로 조계종과 거의 맞먹는 사찰과 승려와 신도를 확보했는데, 다만 전자가 사유재산 (사찰)의 협동체적인 종단임에 비하여 후자는 한국 불교의 숱한 역사적 재산을 사유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태고종이 아직 어느 종단에도 소속하지 아니한 1천여 사설 사암과 군소 불교종단의 것까지 일부 흡수할 태세임에 비하여 조계종의 형편으로는 수습은커녕 소속사찰의 일부가 동요하고 있는 것조차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른 한편에서 두 종단을 다시 비교해 본다면, 이 양립은 한국 불교의 양면성을 설명하는 것이며, 같은 성격의 두 종단이 대치함으로써 오히려 한국 불교의 발전을 전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신적 지주가 될만한 지도자를 얻지 못하고 있는 조계종은 근래 소장 층의 대두가 뚜렷해졌다. 그리고 있는 사찰과 재산을 그대로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포교의 도량으로 이끌어 올리고 사장돼 있는 재산을 가동시켜야겠다는 점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태고종은 지식층의 노승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반면에 후계양성의 문제가 막막한 형편이지만 사 판 승인 까닭에 단순한 교세 확장에는 유리한 점이 없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종단은 동국학원을 비롯한 기타교육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공동으로 협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 불교계의 당면한 과제로서 논의되고 있는 신문·방송 등 대 사회적 포교기구의 설치 문제에 이르러서는 재산과 이권으로 인한 이제까지의 대결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승려와 신도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기독교계에 있어서도 올해 들어 신흥교파의 진출이 눈부셨다. 통일교회의 활동과 순 복음 교회의 확대가 그것이다.
세계 기독교 통일신령협회(통일교)는 9백 교회에 30만 신도를 자랑하면서 10월에는 7백77쌍의 합동결혼식을 갖고, 그 세력을 과시했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신학 공개토론회도 주최, 자기들의 교리인 원리를 현대신학이론의 하나로 주장하고 나섰다.
이 공개토론회에서는 오순절 파의 하나인 순 복음 교회의 번영도 검토되었는데, 이 교회는 여의도에 한국 최대의 교회를 건립하고 있다. 그 밖의 유사 종교형태의 군소 신흥교파도 적잖은 세력으로 부조화의 사회 저변을 휩쓸었다.
이러한 신흥교파의 각광은 기성교회의 부진, 대중사회로부터의 외면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무기력한 교회」는 버림받은 자들의 안식처나 마음의 기둥이 되지 못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신도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따라서 70년에 들어서 기성교회 등은 사회개량을 위한 선봉이 되려는 희망을 어렴풋이 갖게 됐으며, 점차 몇 가지 활동을 통해 그 기를 모색했다. 신 조교가 참여한 사회발전 평화 위 한 위의 결성 등으로부터 그것은 표면화했다.
잡다한 사회봉화기관을 통한 구제활동 만이 아니고 교회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갖가지 사회악과 비인간화 요소들을 절박한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이를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특히 11월에 있은 연세대 신 대 주최의「정치와 신학」공개강좌가 현 사회구조의 불합리성을 교정해야할 기독교인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선교태세와 현실참여 자세에 획기적인 자극을 주었다.
전태일씨의 죽음을 계기로 번져간 양심에 대한 호소, 새로운 소명에 대한 응답자세 문제가 여기서 크게 상기되었다.
기독교장로회 총회가 대 사회발언의 필요를 결의한 것이나, 노동조건에서의 인간성 회복을 들고 나온 YMCA시민논단의 역할은 기독교인의 이와 같은 일련의 자아반생의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내부의 분파 현상과 이권투쟁의 소용돌이에서 기독교가 참다운 생명을 넓혀갈 수 있는 것은 기독교가 신학적인 이해를 통해 바른 사회참여의 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독교는 전문적인 연구기구를 설치하고, 체계적이고 타당성 있는 활동의 길을 찾아야겠다. 그것은 또 어떤 정치세력의 연관 에서 보다도 순수한「복음의 전달」이라는 자세에서 이루어져야겠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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