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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남침 김일성이 간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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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뉴요크14일=김영희 특파원】「흐루시초프」전 소련 수상은「리틀·브라운」사에서 곧 발간하는 회고록에서 북괴의 남침이 북괴 괴수 김일성의 간청으로「스탈린」의 사전 승낙을 얻고 다시 스탈린과 모택동의 협의를 거쳐 50년 6월25일에 감행됐다고 회고했다. 공산 측은 지금까지 한국 동란을 남한의 도발로 발발한 것이라고 강변해왔으나 흐루시초프의 회고 내용은 한국전이 북괴·소련·중공 사이의 사전 조정을 거친 계획된 침략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인한 셈이다.
흐루시초프는 김일성이 스탈린의 사전 승낙을 받으려고 동란 발발 1년 전인 49년에 두 차례나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고 밝히고 김의 구체적인 침공 안에도 불구하고 안심이 안됐던 스탈린은 모택동의 의견을 들은 후에야 청신호를 올렸다고 말했다.
김은 남한 안의 친 공 봉기와 미국의 불개입을 확신한다면서 스탈린을 설득시키려 했으며 모택동도 김의 남침 계획에 동의하고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고 흐루시초프는 회상했다.
그에 의하면 소련은 북괴에 무기 공급은 물론 소련군 장교들이 군사 고문역을 담당하기 위해 북괴군에 배속되고 심지어 평양 방위를 위해 소련공군기들이 배치됐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 안의 친 공 봉기와 미군의 불개입 등 기대가 어긋난 데다 북괴군이 전면적인 괴멸위기에 놓이자 스탈린은 소련 장교 고문관들을 철수시켰다. 고문 철수에 의아해진 흐루시초프가 이유를 묻자 스탈린은『전쟁은 김일성 자신이 치러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혹시 소련군 고문들이 포로로 잡히면 증거가 남는다는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흐루시초프는 또 6·25의 시안이 스탈린이 아니라 김일성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장조 하면서, 그러나 일단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밀어주기로 결정한 후 북괴군이 곤경에 빠지자 후속 적 노력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김일성의 야욕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스탈린을 비난했다.
그는 스탈린에게 당시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이었던 말리노프스키를 시켜 북괴군의 전략을 돕는 한편 전군 부대를 하나 내지 둘만 더 원조해주자고 건의했으나 스탈린이 이를 묵살했다고 밝혔다.「흐」는 만약 자기의 제안이 실행되었다면 부산 점령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미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서울 탈환에 이어 38선을 넘어가자 주은래가 소련을 급히 방문, 중공군의 개입 여부를 논의했다. 처음 이들은 중공군의 개입이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주은래가 중공으로 돌아갈 때쯤 해서는 이 결론이 뒤집혔다고「흐」는 「우크라이나」지구당 제1 서기로 있으면서 한국전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으나 후에「모스크바」지구당으로 승진된 후 스탈린이 비밀 문서를 보여주어 이상과 같은 사실을 알게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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