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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쟁점이었나] 모녀 사망시간 놓고 첨예한 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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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치과의사 모녀 피살 사건'은 1995년 6월 12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이도행씨의 아파트에서 李씨의 부인 崔모(당시 31세.치과의사)씨와 한 살 난 딸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오전 8시50분 李씨의 집에서 연기가 새나오는 것을 본 아파트 경비원의 신고로 소방대가 출동했다. 당시 모녀의 시신은 물이 담긴 욕조 안에 있었으며, 목이 졸린 듯한 자국도 발견됐다.

검찰과 경찰은 "사건 당일 李씨는 오전 7시쯤 집을 나와 오전 8시5분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모녀의 사망 시간이 오전 7시 이전이냐, 아니면 그 뒤냐가 최대 쟁점이 됐다.

검찰은 "아내와 가정불화가 있었던 李씨가 당일 새벽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오전 7시 출근 직전 장롱에 불을 질렀다"며 李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시체의 굳은 정도(시강)나 시체에 생기는 반점(시반) 등을 고려할 때 사망 시간은 오전 7시 이전으로 추정된다"는 국내 법의학자들의 소견을 증거로 냈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스위스 법의학자인 토머스 크롬페처 교수를 국내 법정에 세워 "시반과 시강으로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것은 오차 범위가 넓다. 사망 시간이 오전 7시 이후일 가능성이 있다"는 반론을 폈다. 화재 발생 시간도 논란거리였다.

검찰은 "밀폐된 방안의 장롱 속 옷가지에 불을 붙이면 밖에서 연기가 발견될 때까지 두 시간 이상 걸린다"면서 "李씨가 오전 7시 이전 부인과 딸을 살해한 뒤 출근한 이후에 불이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장롱에 불을 질렀다"고 밝혔다.

그러나 변호인 측이 비슷한 조건에서 직접 실험을 한 결과 불을 놓은 지 5~6분 뒤에 밖에서 연기가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인정하면 李씨가 집을 나간 뒤에 다른 사람이 불을 질렀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대법원은 검찰보다는 변호인의 주장이 진실에 가깝다고 최종 판단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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