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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셋방살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며칠 전 할머님과 같이 시골 고모님 댁에 다녀온 여섯 살 밖이 진이 에게『고모님 댁에 가서 제일 좋은 게 뭐더냐』고 물었더니『할머니가 마음대로 밖에 나가 놀라는 게 좋았고, 대문이 항상 열려 있는 게 좋았어』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아픔을 느꼈다.
어린 게 얼마나 밖으로 활발히 대문을 열어놓고 나가 놀고싶었으면 모처럼 여행간 고모 집에서 어느 것 다 빼놓고 맘대로 밖에 나가 놀라고 한 것이 그토록 좋았으랴.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집은 2층 셋방인데다 대문이 따로 놔있지 않아서 한번씩 드나들 때마다 아랫집에서 대문을 열어 주는 게 여간 미안하지 않다. 밖에 볼일이 있어서 여러 차례 나갈 일도 한번으로 줄여서 나가게 되는 우리 집 식구들의 실정이고 보니 애들이 저렇게 밖으로 나가 놀고싶어 하는 것도 우리가 빨리 대문을 열어줄 수가 없어 아예 애들을 밖에 못나가게 하고 집에서만 놀게 했다. 그나 그뿐이랴. 2층이고 보니 마루에서 조금만 뛰어도 아래층이 울려서 뛰지도 못하게 하고 떠들고 놀 때 면 조용히 하라고 하며, 뭐든지『시끄럽다. 조용히 하라』하며 나나 할머니가 어린이들 놀이에 방해만 해온 셈이다. 이것이 진 이의 마음속에 큰 멍에를 만들었나보다.
모처럼 시골에 갔으니 서울과는 달리 산이 집 가까이 있어 산에도 매일 오르고 들판에서 뛰어 놀아 끼니때 밥 먹기를 싫어할 정도로 즐거워했다는 할머니 말씀에 시골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난 즐거움이 제일 좋았다고 대답할 줄 알았던 진 이가 의외로 대문이 하루종일 열려있는 게 좋았고 할머니가 맘대로 밖에 나가 놀라고 한 것이 좋았다니 이 얼마나 집 없이 남의 집에서 살며 애를 기른 어미로서의 가슴아픈 대답인가.
그러나 그 동안 온 식구가 절약한 덕분으로 내년 봄 따뜻한 날에는 우리도 내 집을 장만하여 들어가기로 돼있다. 내 집에 새로 이사를 해서 살게 되는 날은 어린 진이의 마음에 멍울 져 있는 속박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내 자신이 대문의 파수병이 되어서라도 진 이가 얼마든지 대문을 들 락이며 밖에 나가 뛰어 놀게 하여 오랫동안 남의 집에서 살면서 활발히 밖에 나오고 싶었던 한을 풀어 주리라 몇 번이고 맘속으로 다짐한다.
김은희<주부·서울 용산구 보광동13번지46호 8통8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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