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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가서 재연한 월남전논쟁|닉슨의 태도경화와 의회의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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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닉슨·독트린」과 주 월 미군철수의 시간표 작성, 월남전의 월남 화 등으로 유연한 태도를 보여오던 닉슨 행정부가 최근에 와서 태도를 경화하는 듯한 징조를 보였다. 두 차례에 걸친 북 폭의 재개, 손타이 포로 수용소의 기습,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의 이른바 북 폭 재개의 경고 등이 그것이다.
월맹에 대한 북 폭은 68년 11월 존슨대통령의 중지선언이래 비교적 굴곡 없이 지켜왔었다. 약 2년 동안 65차의 소규모 북 폭이 있었으나 휴전선(북위17도)서부터 북위 19도사이의 협소한 지역에 한정되었다. 말하자면 월맹군의 직접적인 남파를 막는 외에는 북 폭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도록 원칙을 세운 것이다.
워싱턴 주변의 소식통들은 미국의 이와 같은 자제를 월맹과의 묵계로 평가했다. 즉 월맹전체를 미 공군기의 작전 범위로 하지 않는 대신 정찰기들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았다는 얘기다. 레어드 장관 자신은 상원외교청문회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지난 10월부터 있었던 두 차례의 대규모 북 폭은 말하자면 월맹 측에서 『비밀신사협정』을 깬데 대해 미서도 깬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21일에는 바로 하노이 근교에 지상병력을 투입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군사행동은 확 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65∼66년의 사태와 비슷한 양상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닉슨이 한쪽으로 미군을 철수시키면서 또 한쪽으로는 강경 태도를 취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관계전문가들은『미 월 군의 군사적 우세』를 그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월남 안의 1만2천 개 마을가운데 베트콩의 수중에 있는 것은 불과 1천1백 개. 이 조차도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그리고 공산군의 전력도 눈에 띄게 약해져서 지난 8월이래 고작 5, 6회의 공세를 취해왔을 뿐이다.
전쟁의 주도권은 이제 거의 미 월 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성역을 잃은 타격과 인내의 한계가 모두 공산 측에 불리하게 작용한 때문이다. 게다가 티우 정부는 3백만을 목표로 한 건 군 작업에 착수,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닉슨이 굳은 얼굴을 짓는데 대한 미국내의 반응은 거의 한결같이 좋지 못하다. 그 중에서도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원은 닉슨 공격의 최선봉을 맡고 나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제기된 것이 캄보디아에 2억5천5백만 달러 규모의 추가 군 원을 제공하자는 내용의 추가 외 원 수권법안. 풀브라이트 상원외교위원장과 사이밍턴 의원 처치 의원 등은 즉시 이 법안을『싸움터』로 이용할 것을 다짐하고 닉슨의 경화된 월맹정책을 물고 늘어졌다.
상원 측에서 노리는 것이 법안자체보다 대 월 정책인 만큼 질의내용도 거의가 월남에 관한 것. 미정찰기의 월맹상공 비행이 양국간에 양해된 사항이냐, 손타이 기습작전은 미군 포로들이 없는 줄 알면서도 억지로 감행한 것이 아니냐는 등 닉슨 취임 이래의 대월 정책은 하나도 빠짐없이 미주알 고주알 캐고 들었다.
이 바람에 가장 난처해진 것은 답변에 나서야할 레어드 국방장관.
처음에는 구렁이 담 넘기 식으로 적당히 『땜질』을 하려했으나 상원 쪽의 태도가 워낙 강경해서 급기야는 정면설전으로까지 번져버렸다.
레어드는 닉슨 각료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매파이지만 지금까지는 의회, 특히 풀브라이트의원과 퍽 화목하게 지내왔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아주 견원지간으로 갈라선 것이다. 두 사람의 의견과 감정이 가장 격돌했을 때의 질의와 답변을 살펴보면 견원지간이란 말이 심한 표현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풀브라이트=손타이 기습작전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당신 네 들은 당시 그곳에 미군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데….
레어드=상원 외교위원장으로서 이 작전의 전모를 밝히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습이 있기 전에 우리 포로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걸 알았다는 예기는 헛소문입니다. 풀브라이트 의원께선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풀브라이트=닉슨 대통령이 10일 기자회견에서『보호 적 반격』운운한 것은 공중전을 확대하겠다는 의미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레어드=어쨌든 북 폭 규모는 축소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월맹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면 북 폭은 언제든지 재개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이제 『깨어진 거울』처럼 예전대로 되기가 어렵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들 두 사람은 미국내의 전통적인 두 세력. 보수주의와 리버럴리스트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고있다.
레어드는 닉슨의 세계평화에 대한 노력이 점차 결실을 맺고 있다고 믿는다. 주월 미군은 늦어도 내년 말까지『거의 다』철수할 것이며 69년 초에 3백40만 명을 헤아리던 미군규모가 72년 말에는 2백40만으로 감축될 예정이라고 내세운다.
그러나 풀브라이트의 견해는 전혀 다르다. 닉슨 독트린과 주 월 미군의 철수는 여론의 압력에 따른『겉보기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닉슨이 천명한 소위『보호 적 북 폭』은 구체적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근자의 닉슨 행정부정책이 작년 7월에 천명한 이른바 닉슨·독트린의 방향에서 좀 옆길로 벗어나는 듯이 보이는 것은 틀림없다.
닉슨 대통령이 분명 군사적 승리를 추구도 포기도 할 수 없는 딜레머에 빠져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된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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