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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어요섭<영 비스 뉴스 특파원>|본사 독점수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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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낮엔 풀어 줬지만 밤엔 침대 다리에 묶은 채 재웠다.
감시병 한사람이 또 다시 방에 들어오면서 보따리 하나를 방바닥에 팽개쳤다.
무심코 그것을 쳐다보다 말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이들에게 붙들릴 때 빼앗긴 녹음기와 테이프가 아닌가. 나는 원래 이번 취재를 떠날 때 이틀동안 야전에서 머무를 생각이었으므로 우리 대중가요, 일본 음악 등이 담긴「카세트·테이프」를 갖고 왔었다. 이것을 당장 틀어보자면 어떻게 하나.『거짓말을 하면 죽인다.』

<깨끗하게 죽자 결심>
『죽어도 좋다. 절대 사실이다.』이 같은 대화를 나눴던 것이 번뜩 떠올랐다. 더군다나 65년에 담은 월남 전투 실황 녹음과 서울의 모 방송과 「인터뷰」했던 것도 담겨있으므로 당장 내 정체가 드러날 것 같았다. 나는 꽤 이런 너저분한 테이프까지 가져왔는지 알 수가 없다. 후회해봤자 쓸데없는 일-. 이놈들이 틀어 봤을 테니 변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에게서 빌어 떠나느라고 아무거나 집어왔는데 지워서 쓰려고 했다』라고-. 죽을 때 죽더라도 곱게 죽자고 마음을 잡으니 겁날 것이 없었다.

<구역질 나는 수세미 국>
베트콩은 다행히도 테이프는 거들떠보지 않고 지갑을 꺼냈다. 7백「리엘」이든 지갑인데 감시병이 그 속에서 가족 사진을 꺼내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딴 사진은 걸릴 것이 없었지만 서울 집 현관에 놓인 고부신짝이 마음에 걸렸다. 순간 순간에 가슴 죄는 일이 연속됐지만 모두 무사 통과였다.
『후유-』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그날 밤을 푹 잤다.
11월26일-. 깜깜한 새벽부터 맨발의 행군이 시작됐다. 동틀 무렵에 어느 큰 마을에 들어섰다. 바삐 돌아가는 월맹군의 장비를 보니 무전기·트럭·지프 등을 갖추고 있었다.
고급 사령부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의 행동 반경은 제한돼 있어 어디가 어딘지 전혀 분간하기 어려웠다. 4일 동안을 이곳서 머물렀다. 이곳에선 안남미 밥에 수세미 국을 주었다. 냄새를 참을 수 없어 구역이나 번번이 몇 숟갈 뜨다 말곤 했다. 병력이 달려서 그러는지 은폐된 감시 방법으로 나를 시험하는지 이곳에선 나를 민간 복 차림의「캄보디아」사람과 함께 기거케 했다. 먹는 것은 똑 같았다.

<평화 깃들인 바나나 밭 행군>
이들은 노무자 같았는데 수세미 국만 먹어서인지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다. 영양 실조에 걸려 있는 게 분명했다. 이들「캄보디아」사람들과 사흘동안 퍽 친숙해 졌다. 그러나 위장 전술인지 알 수 없어서 꼬투리를 잡힐 언동은 은근히 삼갔다. 내일 아침엔 또 행군이 있을 거라고 귀띔해줬다.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얘기였다.
11월30일-. 바나나 열매가 탐스럽게 늘어 뜨려진 칙칙한 정글로 옮겨왔다. 너 댓 명의 감시병이 총부리를 내 쪽으로 겨누면서 걸었다.
석방을 시켜 준다고 사탕발림을 하고선 왜 또 이렇게 끌고 다닐까 점점 의심이 갔다. 바나나 밭을 누비면서 걷는데 내 감시병 하나가 퍽 쓰러졌다. 배탈이 났는지 얼굴이 질려 있어 그 친구의 배낭을 내가 메고 행군을 계속했다. 그 병사는 스무 살도 돼 보이지 않은 순진한 얼굴로 나를 무척 따랐다. 적이라는 생각은커녕 베트콩에 끌려 다니는 어린 동생 같이 느껴졌다. 측은했다. 바나나 밭에서 이틀을 보냈다. 파이내플 밭도 있었다. 정글 안에 수 만개의 파이내플이 주렁주렁 익고 있었다. 무진장한 자연의 보고에 인적마저 없으니 더욱 보고 다 왔다.

<고향 꿈꾸고 나니 허탈감>
내가 마치 이 열대 농장의 주인 같았다. 포성도 안 들리고 정부군의 공습도 전혀 없이 평화 경에 묻힌 정글이어서 마음이 느긋하고 내가 적의 수중에 있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엄연히 속맘을 알 수 없는 베트콩의 감시 속에 있음을 깨닫고 살길을 찾아야 했다.
처음으로 고향 꿈을 꾸었다.『꿈에 자주 보이니 몸조심하라. 어서 위험 지역을 벗어나라.』8순의 장모님이 손자를 통해 내게 편지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노인들의 꿈은 참 잘 맞는다고 믿고 싶었다. 연말까지 석방을 끄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서울의 가족들에게 선물도 카드도 보낼 수 없게 되었구나 고 생각하니 한심했다.
작년엔 사이공에서 프랑스 인형과 화장품을 사서 딸과 아내에게 크리스머스 선물로 보냈다고 기억한다.
아들에겐 만년필을 보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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