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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비정상적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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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청와대의 홍보 능력에 감탄하곤 한다. ‘양념’ 치는 솜씨도 제법이다. 요즘 눈에 들어온 건 이런 것들이다.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국회에서 야당과 ‘정국 관련 회담’을 제안한 건 처음이다.”(12일 이정현 홍보수석)

 2년 전에도 유사한 국회 회담이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2003년엔 야당 당사에서의 회동 제안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수석의 주장은 옳다. ‘정국 관련 회담’이란 명칭이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도 이런 식의 다양한 첫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기념행사 등이 사라진 이후 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청와대에 와서 대통령의 격려를 받는 건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다.”(지난달 청와대 관계자)

 23개월 전에도 대통령이 참석한 같은 취지의 행사가 있었다. 그래도 시간의 상대성이야 정립된 진실 아닌가. 찰나가 영겁 같을 수도, 영겁이 찰나 같을 수도 있다. 당사자가 ‘굉장히 오랜만’이라면 굉장히 오랜만인 것이다.

 사실 밤낮 없이 일하는 대통령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대통령에게 푹 빠지곤 한다. 애국심에 감탄한다. 청와대 밖에서 뭐라든 추앙하게 된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전하고 의미 부여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 간에라도 ‘양념’이 들어가는 이유다. 양념을 잘 넣는 게 실력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선 이런 애정이, 실력이 정국 운영에서도 발휘되길 고대하곤 한다. 7개월 된 새 정부 치곤 기괴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져서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외치는 사이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상화한 격이다.

 윤창중 사건이야 개인의 돌출 행동이라고 치자. 전 세계 어느 나라 스파이 기관이 이토록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한 적이 있는가. 한 정치학자도, 한 외교관도 “비정상적”이라고 했다. 그 사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건으로,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으로, 또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식 의혹으로 번져갔다. 5대 권력기관은 이리저리 흠집 났다. 시중에선 “75년 대한변협 회장이 간통 사건으로 낙마했을 때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역사 논쟁’까지 벌어졌다.

 대통령이 야당을 만나는 데 빈손으로 간 것도, 또 할 말을 다 한 것도 이상했다. “소수당은 양보할 게 없다”던 대통령이 소수당의 양보만 요구한 격이니 더욱 그랬다.

 뭐니 뭐니 해도 상식에 반한 건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의(辭意) 논란이었다. 대통령에게 뜻을 전한 것 같지 않은데 물러나겠다는 뜻이 공개돼서다. 정무직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말할 자유가 없다. 통치권에 누(累)가 될 수 있어서다. 진 장관은 그러나 논란 이후에도 “한계, 무력감을 느껴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복지공약 번복의 부담이 크다곤 해도 임기 첫 해에, 대통령이 아낀다고 알려진 3선의 중진이 할 처신인가 의아했다. 게다가 ‘한계’ ‘무력감’은 또 뭔가.

 정책이란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그런데도 정국이 묘해서 청와대 사정을 아는 지인들에게 답을 구했다.

 “대통령 혼자 돌릴 수 있는 시스템이 더 이상 아니다. 위기엔 수석도 행정관도 자발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그걸 싫어하니. 곧 바뀔 수도 있다는 말에 뒤숭숭해만 하고.”

 “정리하고 단속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지침은 있는데 실행과 마무리가 안 되고 있다. 대통령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고 여겨 횡적 논의도 없다.”

 얼마 전 김기춘 비서실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윗분의 말씀을 전할 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올 초 대통령 앞에 결재판이 쌓일까 걱정했었다. 이젠 대통령이 업무 진행표까지 챙겨야 일이 진행되나 싶다. 대통령의 하루가 더디 가길 바랄 뿐이다.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