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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서 만난 우리 고 미술품들|보존 정책의 반성과 함께|김원룡 <국립박물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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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1월21일 서「베를린」에 새로운 동양 미술관이 열려 개관 축하객의 하나로 거기 진열품들을 보고, 아울러 몇몇 큰 도시의 박물관을 견학 할 수 있었는데, 전후 독일의 발전에 새삼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이번에 개관된 「베를린」의 국립 동양 미술관은 독일의 내일을 감안해 동서 장벽에 근접한 「베를린」 복판에 건립했는데, 그 건물이나 전시 방법이 가장 현대적이며 박물관으로서 도달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을 과시하고 있었다. 역시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궁 안에 있는 선사 박물관도 입체적이고 「드러매틱」한 전시를 통해서 가장 흥미 있고 교육적인 선사 박물관으로 되어 있었다.
이번 2주일 동안의 체재를 통해서 전시품 그 자체보다 박물관 운영이나 전시 방법 등에 관해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나 그런 이야기는 박물관 이외에는 흥미 없는 일이고, 여기서는 몇몇 서독 박물관의 우리 고 미술품들에 관해서 「메모」정도의 소개를 해두기로 한다. 이왕이면 남의 나라 박물관에 가서 그 진열품에 대해 구입 또는 수집 경위들을 묻는 것은 일종의 「터부」처럼 되어 있으나,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는 자기 나라 문화재에 대해 몹시 국수적이고 까다롭다는 소문이 돌아서 그런지, 우리가 무슨 「메모」만해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학술적인 필요에서 물어보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되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요새는 외국엘 가서 우리 물건을 보아도 그저 「원더풀」이나 연발하고 있어야지 그 이상의 취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문화재 보존의 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서독에는 「베를린」과 「쾰른」에 각각 동양 미술관이 있는데. 동양 미술하면 중국·일본과 함께 한국이 반드시 끼게 돼 있다. 특히 극동 하면 언제나 꼭 한·중·일 3국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전시품의 질이나 양으로 보면 우리 나라는 도저히 다른 두 나라를 따를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 나라 고 미술품의 절대적인 수량 부족에 근본 원인이 있는 것이 분명 하지만, 외국 박물관들이 우리 나라 미술품 수집에 대해서 다튼 두 나라 것 보다 덜 열의를 가지고 있는 것도 큰 원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느 박물관이나 우리 나라에 관해서 계통 있는 큰 수집을 가지지 못했고, 주로 일본 시장에서 분산적으로 사들인 것이나, 어쩌다가 우리 나라서 흘러나가는 것을 하나를 구입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근래에 와서는 문화재 해외 유출 방지니 해서 점점 국제적으로 까다로워지니까 의식적으로 수집이나 구입을 경원 내지 기피하고 있다.
북부 독일 「함부르크」 시립 미술·공예 박물관의 경우는 진열 「카드」에 적힌 정리 번호에 의하면 한일합방 전인 1895년에 산 「상감 청자 포류 문완」이 있어 아마 외국 박물관에 팔려간 제1호 미술품임이 거의 틀림없을 것 같다.
여기 박물관장이 직접 자랑한 바에 의하면 그 박물관은 독일에서도 동양 미술품 수집으로 최고참이 된다는 것인데, 과연 우리 나라 미술품에도 전기 청자완 이외에 1910년 구입의 「청자 진사 운반 주전자」가 있고 이조 초의 나전 칠기로서 거의 같은 시기에 사들인 원면과 방형면의 두개가 있다. 특히 청자 주전자는 유약등 질이 떨어지긴 하지만 「보스턴」미술관과 이병철씨가 각각 비장 하는 것과 동형 동대며 거의 동일요 동일인의 작품이다.
이병철씨 소장품이 이번 동경 박물관에서 열린 「동양 명도전」에 출품되어 동양명도십품 속에 들어간 것은 유명한 이야기인데 그런 명품이 멀리 「함부르크」에 60년 전에 팔려갔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몇 점의 고려 청자와 이조 자기는 이번 개관한 베를린 동양 미술관에도 있고 「라인」강변의 공업 도시 「뒤셀도르프」의 「헤트옌스」 도자 박물관에도 있다. 그러나 「베를린」미술관에는 일본의 「고하기」 (고추) 「오리베」 (직부) 「고가라쓰」 (고당진) 같은 이조식 다완들이 섞여 있는 것 같고, 「헤트옌스」 박물관에는 가짜 청자가 한 두점 들어 있었다.
「베를린」 동양 미술관에는 도자기 이외에 여말이초의 지장 보살 그림 족자 1폭과 고 신라의 금제 목걸이 (1) 금제 귀걸이 (5) 등이 있다.
지장 보살 그림은 동관의 도록에도 원색으로 나와 있는데 15세기를 내려가지 않을 좋은 물건이다. 목걸이는 영락 달린 금구를 꿰매고 가운데 곡옥 1개를 둔 것이고, 귀걸이들은 모두 세환식으로 한 쌍만이 완전하다.
서독에서 질·양면에서 가장 뛰어난 한국 미술품 수집은 「쾰른」의 동양 미술관이며 독일 내 동양 미술 연구의 중요한 근거지로 돼 있다. 여기 있는 학예직들이 내년 봄에는 모두 우리 나라엘 꼭 오겠다고 하였다. 이곳의 한국 미술품은 모두가 전 관장 「슈파이저」 박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며 청자만 약 60점에 달한다. 그 중에는 청자 음각하엽문 주전자(2개). 청자 장두병 등 거의 국보 또는 보물급의 명품이었으며 따로 고려 말기의 나전 칠기 경함과 이조 칠기 4점등이 주목을 끌었다.
그중 이조 중기에 속할 채홍 나전 칠기는 16×28·2×19·6㎝ (고)의 장방형 상자인데 뚜껑에는 보상화문을 둘러 중앙에 쌍 학이 들어 있고 곳곳에 채홍한 희품 이다. 1962년 「슈파이저」 관장이 동경서 7백 「마르크」 (약 2백「달러」)에 샀다는 것이며 그의 저서 『동양의 칠기공예』 (Lack-Kunst in Ostasien=65년간)에 원색으로 하여 고려·AD 1천2백년경이라 소개하니 일본 상인도 배를 앓았다고 한다.
또 고려말의 경함은 대영 박물관이나 동경 박물관에 있는 것과 비슷한 작품이다. 그리고 미술품은 아니지만 역시 북독의 「브레멘」에 있는 「위바제」 민속 박물관에 들렸더니 우리 나라 목장승이 두개가 우뚝 서 있는데 깜짝 놀랐다. 의외의 곳에서 우리 나라 시골 영감님이라도 만난 것 같아 반갑기 짝이 없었다. 우리 나라 장승도 이제는 거의 다 없어지다시피 되어 가는데, 누가 짊어지고 갔는지 이렇게 먼 이역에 보존되어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역사의 틀을 더 쓰게 될 것이니, 문화재 보존이란 꼭 우리 나라 영토 안에 있어야만 하는 것인지 재고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물건들을 보아도 그렇고, 관원들의 설명을 들어도 중국·일본 것에 대해선 흥미도 지식도 많으나 우리 나라 것에 대해서는 아직 앞길이 먼 인상이 깊다. 상대가 문화재 보존 전시 기관일 경우에는 비목 외국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길을 열어 준다든가 하는, 좀더 문화재 보존에 대한 우리의 살 방식을 신축성 있게 고쳐 나가서 의의 있고 실효 있는 전통 문화 선양과 유지 보존을 꾀하여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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