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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 김장 푸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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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치는 우리의 식탁에서 제쳐놓을 수 없는 풍미이다. 사철을 두고 우리의 구미를 돋운다. 이국 풍정 속에서도 한국 사람은 이 김치 맛의 향수는 좀체로 달래기 힘든다고들 말한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식탁에 김치가 오르면, 모두들 함성이라도 지를 듯이 푸짐하게 입맛들을 돋우곤 하는가 보다.
김치의 유래가 미심쩍은 것은 좀 섭섭하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의 주문왕 때 김치를 담갔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수광 저 (이조 광해군 때 사람) 『지봉유설』에는 고추가 선조 때 일본에서 건너 왔다는 기록을 보여준다. 김치에서 고추가 빠지면 김빠진 맥주다. 이것으로 미루어 김치가 우리 식탁에 가까이 온 것은 이때부터가 아닌지 모르겠다.
속설에는 한자 표기의 「침채」를 두고 중국 유래설을 고집하는 이도 있다. 「침채」가「김치」로 변음 되었으리라는 추측에 근거를 둔 것이다. 하긴 사천채라는 것도 있긴 있다. 사천은 삼국시대 때 해로를 통해 우리 나라와 왕래가 잦았다. 그러나 김치는 그리로 건너갔는지, 건너왔는지는 더 연구해 볼 문제이다.
싱싱한 소채를 그 맛에서나 신선도에서 김치를 담그는 것 이상으로 저장하는 법은 없을 것 같다. 냉 장시설을 한다 해도 그 많은 양을 모두 간수할 수는 없다. 더구나 가미까지 해두기란 좀체로 성가신 일이 아닐 것이다. 선인들이 김치를 발명 (?)한 것은 역시 동양적인 여유감이 있다.
동절의 김치는 첫서리가 내릴 무렵부터 주부들의 마음을 설레어 놓는다. 김장은 흐뭇한 풍습이면서도 서민의 마음을 마냥 무겁게 한다. 이미 이맘 때면 김장은 철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날씨가 풀린다고는 하지만, 벌써 들판의 야채들은 한물 추위를 겪은 것들이다.
느닷없이 닥친 추위는 서민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해주었다. 추위도 추위지만, 김장거리가 귀해지면 값이 오를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새 김장값은 꼬박 두갑절이나 올랐다. 비명을 지를 사람은 미적미적 김장을 미루어오던 서민들이다.
당국은 어서 서둘러 손을 써야 할 것이다. 결국은 김장거리를 시장으로 옮겨다 놓는 일부터 도와주어야 한다. 흉작이라면 몰라도, 그 운반이 고르지 못해 값이 오른다는 것은 당국도 책임이 있다. 가뜩이나 썰렁한 세모에 김장까지 담그지 못하고 애를 태우는 서민들의 심정은 넉넉히 짐작 할만 하다. 김치가 없는 식탁이 얼마나 살벌할 까는 두번 생각할 일도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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