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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고 버티는 닉슨과 불만 각료|중간선거 후 개각 뒷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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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번의 중간선거에서『신통치 못한 승리와 큰 타격 없는 패배』를 동시에 맛본 닉슨 대통령은 오는 72년 대통령선거에 대비,『일사불란한 내각』상당히 광범해서 히켈 내무장관·모이니핸 고문 등 이미 발표된 사람들 외에도 케네디 재무, 하딩 농무 등의 경질 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히켈 내무장관의 해임 설은 지난 5월 이른바『서간문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기정사실처럼 되었던 것. 닉슨이 미군의 캄보디아 진입을 결행한 직후『젊은이들의 열망과 각료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라』고 진언했던 이 서한은 닉슨-각료불화 설을 낳을 만큼 꼬리 긴 여운을 남겼었다.
그러나 히켈 장관 측에서는 이 글이 외부로 새어나갔다는 사실이『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전에도 같은 종류의 글을 보낸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하필이면』이 서한만이 박으로 새어 나왔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
어쨌든 그는『나를 채용한 사람이 닉슨인 만큼 내쫓을 수 있는 것도 닉슨 뿐』이라면서 스스로 사표를 제출할 것을 거부했고 소원(?)대로 해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히켈 장관의 해임이 그냥 보류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관측도 있었다. 『안 나가겠다』는 사람을 쫓아내는 것도『쉽지 않은 일』이고 게다가 지난 중간선거 때는 애그뉴 부통령에 버금갈 만큼 맹활약을 했기 때문. 말하자면 닉슨이『그러한 열성을 72년 대통령선거 때 활용』하려 할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축출로 나타났다. 그것도 중간선거 때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내쫓는 읍참마속 식이 아니라 죄와 벌의『매정한 공식』에 따른 조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해임 된지 닷새도 채 못되어 패트릭·라이언 수석보좌관 등 6명의 히켈 근 위 사단이 역시『해임』되었으며 그 숫자는 앞으로 더욱 불어날 것이라고 전해진다.
히켈 장관에 이어 연말 전에「출 내각 기」의 불운을 맞을 것으로 관측되는 사람이 데이비드·케네디 재무장관. 현재 11일간의 예정으로 유럽 제국을 방문중인 그는 본국에서의 『모가지 소문』에『그럴 리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귀국하는 대로거나 늦어도 해가 바뀌기 전에 경질될 것으로 보인다.
닉슨-데이비드·케네디 간의 마찰은 주로 국내경제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온 것. 『너무 소홀히 하지 않느냐』는 재무장관이 불만과『최선을 다해 왔다』는 닉슨의 강변이 어느덧「불화의 선」에까지 이르렀다는 풀이 이다. 올해 65세의 전 시카고 은행총재인 데이비드·케네디 역시 히켈의 경우처럼「자진사퇴」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개각 바람에 가장『난처한』입장에 빠진 것은 각료 급의 대통령 고문 모이니핸씨. 벼슬자리가 떨어지게 되자 전에 강의를 했던 하버드 대학으로 돌아갈 뜻을 비쳤으나 학교측에서『오지 말라는 소리나 다를 바 없는』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애초에 모이니핸이 닉슨 호의 승무원으로 들어설 때부터『불길한 항해』라는 소리가 높았다. 도시문제의 전문가이며 전형적인 진보주의자인 그가『고집불통의 보수주의자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견디겠느냐는 것이 그 이유. 말하자면『까마귀 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식의 충고였다.
그러나 사태는 뜻밖으로 번졌다. 존슨 대통령 시절에『흑인들의 지위향상을 위한 제언』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가 닉슨에게는 소위『관대한 차별정책』이론을 제안했기 때문. 사신 형식으로 은밀히 전달했던 이 문서가『운수 사납게도』밖으로 누설되어 나오자 모이니핸은 하루아침에『가장 비양심적인 학자』『형편없는 정치인』으로 낙인 찍혔다.
하버드 대학이 그의 복귀 희망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 사신 때문이었다.『사절대학이라면 와도 좋다』는 답변이지만 이것은『절대 오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
모이니핸이 이 굴욕적인 제안을 받아들일 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이니핸 외에도 학계에서 정계로 옮겨 앉았다가『후회 막급』이었던 사람들은 그 건에도 많았다. 역시 하버드 출신인 MIT교수 로스토는 존슨시절에 보좌관으로 앉았다가 모이니핸고 똑 같은『망신』을 당했고 러스크 전 국무장관은 1년여의 유예기간 끝에 겨우 버지니아 대학에 정착했다. 그리고 오는 연말로 외도의 만기를 맞는 키신저 역시『조마조마한』마음으로 모이니핸의 일을 지켜보고 있다. <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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