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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디자인 선구 콜라니, "한국 디자이너들이여 역사 기억하며 힘 얻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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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콜라니는 “좋은 디자인이란 인간에게 봉사하는 디자인”이라고 했다. [강정현 기자]

“나는 3차원 철학자다.” 루이지 콜라니(85)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엔지니어이자, 철학자이며, 디자이너란 의미라고 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바이오디자인의 선구자’로 불리는 콜라니는 자연의 곡선을 디자인에 유기적으로 응용해왔다. ‘인간이 만든 어떤 건축물도 거미가 만든 거미줄보다 못하다’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미국 맥도넬더글러스 항공기, BMW 700 스포츠카, 피아트·페라리·마즈다 자동차, 캐논 카메라 등을 디자인했다. 그의 작품 ‘드롭’(세계적 도자기 브랜드 로젠탈의 물방울 모양 차주전자)은 뉴욕 쿠퍼 휴이트 박물관에, 소니의 헤드폰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됐다. 수많은 디자인 상을 받았고, 스위스·일본·프랑스·독일 등에서 디자인센터를 운영했다.

 지난 17일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참석차 방한한 그는 이화여대와 KAIST, 서울대 등에서 특강했다. “2001년 현대자동차와 디자인 관련 협상을 위해 잠깐 들른 뒤 첫 방한”이라고 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몸짓은 컸다.

 - 12년 만의 방한인데.

 “당시와 지금 한국 디자인의 수준은 다르다. 일부 한국 자동차의 곡선은 메르세데스 등 유럽차보다 낫다. 한국 여자들은 정말 옷을 잘 입는다.”

 독일 태생인 그는 베를린조형대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으로 갔다. 전공은 기체역학.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때 분석철학도 공부했다. 콜라니는 “철학이야말로 자신의 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나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시계를 디자인할 때도 이 시계가 뭐에 쓰이는 물건인지, 어떻게 써야 편한지 등 수천수만 가지 질문을 던진 후 그 모든 질문을 아우르는 하나의 답을 찾아내 그에 맞는 디자인을 한다.”

 - 좋은 디자인이란.

 “인간에게 봉사하는 디자인이다. 새 둥지를 보자. 새는 깃털 등을 모아 자신이 머무를 보금자리를 먼저 만들고, 마지막에 나뭇가지로 외부를 마무리한다. 자신이 살기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집을 짓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가. 겉치레를 먼저하고 안을 채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을 한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자들을 위한 디자인이 돼야 한다.”

 말을 마친 콜라니는 갑자기 자신을 찍고 있던 사진기자에게 들고 있던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이 캐논 카메라의 오른쪽 손잡이 부분이 불룩 튀어나와 있다. 카메라를 들고 찍기에 편하게 만든 것이다. 내가 디자인한 거다. 이전 카메라는 모두 네모난 상자였다.”

 - 왜 곡선으로 디자인을 하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 1cm라도 직선인 부분이 있는가. 지구도 우주도 둥글다.”

 -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나.

 “졸작들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잠수가 취미인데 대기 압력의 600~800배에 이르는 수압을 몸으로 느끼며 비행기나 자동차의 선의 흐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 한국에 대한 인상은.

 “공예비엔날레가 열린 청주가 정말 마음에 든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인간적이다. 청주에 콜라니 디자인센터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1년의 절반은 중국 상하이 등에서 머무르며 5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나머지는 청주에서 지내고 싶다. 중국은 국가적으로 디자인 부문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으며 빠르게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

 - 한국 디자인은 어떤가.

 “전반적으로 괜찮은 수준이지만 독창성과 깊이가 부족하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거기서 힘을 얻어야 한다. 나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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