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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에 유출되는 소 전위예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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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로마=정신규 특파원】저항작가들의 문학 작품이 감시망을 뚫고 서방세계로 흘러나와 소련당국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때, 이번에는 전위화가의 그림을 놓고 서방수집가와 소련경찰 사이에 숨바꼭질이 한창이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수집가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개기가 된 것은 지난달 스위스의 루가노 미술관에서 열린 소련 전위예술 전. 56명의 작품 3백80점으로 희화와 스케치가 대부분이지만 소련국내에서는 공개 못하는 추상화가 일부 포함됐다. 그 작품들은 서방화가들과 또 다른 신비의 세계, 상징적 우화 등 동양적 색채를 띠고 있다. 전시작품들은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의 개인 소장품이고 일부 소련으로부터 몰래 흘러나온 것들이었다. 소련국내에서는 금지된 이들 그림은 모스크바 거주 서방 인이 보내는 가방, 소포 속에 넣어져 밀수된 것들이다. 찢어진 몇 개의 그림은 소련국경을 어떻게 모험적으로 넘었는가를 증명하고 있었다.
56명의 화가 중 한 명도 이 전시회에 참석치 못했는데 그중 블라미르·야코프레프·알렉세이·미추노프·바실리·시트니코프 등이 현재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소련에서 화가들이 정신병원에 유폐되는 일은 드문 일은 아니다. 초기의 추상화가 가운데 레프·크로피브니치키와 신인상파의 보리스·스비에스니코프·울로·소스터가 일찍이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이들은 한결 같이 소련정부에 반대되는 정치적·미적 논리를 예술활동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병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의 화가들은 추상화의 공개를 금기로 삼고 있다.
소련의 전위예술가 중 서방세계에 최고의 미술가로 알려진 에른스트·네이스베스트니나 오스카·라빈은 막상 국내의 미술관에 그들의 작품을 거의 전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위화가들은 개인 아파트나 농장 등에서 조그마한 비밀 전을 열기도 하며 최근에는 모스크바의 한 공장 휴게실에서 3시간의 전시회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이런 자리에는 지식인·외교관·신문기자들로 구성된 구매자들이 모이곤 한다. 이러한 비밀 전을 통해 앞으로 이들 전위화가들의 추상화가 서방세계로 흘러나올 것은 확실하며 여기에 소련경찰의 감시의 눈이 더욱 번득일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관측자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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