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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인재를 키우자] 9.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 성취욕 심어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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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일렉트로룩스 코리아의 박갑정(39)대표는 1998년 10월 일렉트로룩스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사장에게서 한국법인을 설립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당시 효성정보통신의 마케팅 매니저(과장급)였던 朴대표로선 세계 1위 가전업체의 한국법인을 신설하고, 몇단계나 뛰어올라 총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는 설립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두말 않고 맡겠다고 했다.

朴대표는 "한샘과 효성물산 등에 근무하면서 일렉트로룩스 등 수입 가전을 담당했던 것이 인연이 됐다"면서 "스카우트 제의를 할 때 돈보다 기회와 장래성을 더욱 강조해 맘에 들었다"고 말했다.

朴대표는 "회사에서 밑그림을 그려주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한국 실정에 맞게 그림을 그리고 사업을 펼쳐 보라는 주문이 매력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자신도 한국법인 직원을 뽑을 때 기회를 줄테니 사업 그림을 그려보라고 말한다.

◇돈보다 기회가 최고="돈을 가장 강조하진는 않습니다. 돈은 '넘버 3'입니다."

일렉트로룩스 인사 담당자들은 인재들을 어떻게 유치하는가 라는 질문에 한결같이 이렇게 답한다.

일렉트로룩스의 경우 돈은 기본이다. 성과가 좋으면 스톡옵션이나 보너스도 두둑히 준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는 다른 대부분의 기업도 하고 있다. 게다가 핵심 인재라면 돈에는 그다지 아쉬움이 없다. 이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기회와 도전, 그리고 이를 통한 성취욕의 충족이다.

일을 잘 하면 상사보다 앞서 승진할 수 있고, 여러가지 다양한 일을 경험해볼 수 있으며, 힘들고 어려운 과제들을 맡기는 기회들이 있는가를 더욱 중시한다. 이런 기회와 권한, 승진들을 제공하지 않으면 이들은 언제든 쉽게 떠나갈 수 있다고 일렉트로룩스 측은 밝힌다.

이 회사 인력관리.개발을 담당하는 헤럴드 웨스만 부사장이 "어느 한 사람에게 금전적으로 특별히 차등 대우해 주지 않는다"면서 "회사는 인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이들이 차츰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재를 유치할 때 회사의 장래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렉트로룩스는 냉동.냉장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가스레인지.오븐 세계시장 1위 등 현재의 성적표를 강조하지 않는다.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그리고 인재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비전있는 회사여야 인재들을 매혹시킬 수 있어서다.

◇오래 남을 사람을 뽑는다=일렉트로룩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사람을 뽑는다. 회사에 오래 남아 있을 사람을 가장 우선순위로 한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잠깐 머물다 갈 '철새'인재는 뽑지 않는다.

회사 측은 "현재의 직무만 보고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들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지, 회사로서 충분히 가능할지를 보고 뽑는다"고 말했다. 기계를 구입할 때 이 기계로 수년 동안 어떤 결과를 낼지 알아보고 사는 것처럼, 새로운 인재에게 투자하면 향후 어떤 결과를 창출해 낼지를 충분히 검토한 후 선발한다는 얘기다.

일렉트로룩스는 사람을 뽑을 때 세가지 능력을 본다. 업무 수행능력.세계 적응능력.소비자 산업 경험 여부를 중시한다. '세계 적응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 회사가 1백50여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살아 남을 수 있을 정도"로 글로벌화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또 가전산업은 소비자 산업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소비재 산업에 근무한 경험을 중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핵심 인재는 1%에 불과=일렉트로룩스의 핵심 인재는 8만7천여명으로 임직원 중 1천여명에 불과하다. 1%가 약간 넘는다.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정도밖에 안됐다.

당시 '탤런트 리뷰 프로세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발된 1천여명의 실적과 잠재력을 도표로 만들었다. 그런 후 이들의 사업 실적과 잠재력을 매년 점검.평가한다.

평가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인재 선발시와 똑같이 인재가 회사에 얼마나 오래 머무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근무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열의가 있는가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특정 지역만 선호하는 인재는 낮은 평가를 받는다는 얘기다. 잠재력을 평가할 땐 상위 그룹으로 올라갈수록 리더십이 중요한 항목이다.

평가 방식은 독특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 평가한다. 평가그룹 최상위에 최고경영자(CEO)가 있고, 이 아래엔 고위 임원 12명이 둘째 평가그룹을 이룬다. 고위 임원당 3~6명의 간부가 일하고 있어 셋째 평가그룹은 80명선이다.

이들을 모두 합쳐 전체 93명이 1천여명의 핵심 인재를 평가하고 관리한다. 평가 절차는 이렇다. 우선 80명의 간부가 1천여명과 토론한 결과를 평가한다. 그런 후 이를 둘째 평가그룹에 보고한다. 12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이틀 동안 80명의 간부 그룹을 만나 격론을 벌여 1천여명을 평가하고, 이를 사장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이들 1천여명은 각자 실적과 잠재력에서 핵심 인재 그룹 중 어느 정도의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모른다. 다만 핵심 인재 그룹 안에 포함돼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회사 측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계속해서 바뀐다"고 말했다. 탤런트 리뷰 프로세스 프로그램은 핵심인재 평가 및 육성뿐 아니라, 주요 보직에 대한 승계 프로그램으로도 활용된다. 주요 직책이 공석이 되면 이 자료를 토대로 해 사람을 선발한다.

스톡홀름(스웨덴)=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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