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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20년만의 추파와 실리외교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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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공 「유엔」가입안에 극적 전기를 가져온 총회표결을 앞두고 등장한 「유엔」본부회의장에서는 예년과 다름없이 중국대표권에 관한 토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마감된 발언신청명단에는 이름이 빠져 있었지만 중공·소 관계가 악화된 지난 몇 해 동안 줄곧 그래왔기 때문에 각국대표들은 그 발언국 명단에서 소련이 빠진 것을 이례라고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이례적인 사태는 토의가 거의 끝날 무렵에 나타났다. 묵묵히 앉아있던 소련대사 「야콥·말리크」가 일어나 발언권추가신청을 얻기 위해 다른 대표들의 동의를 얻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날 총회의장의 양해까지 얻은 「말리크」는 연단에 올라 『소련은 중공의 합법적 권리를 전면 회복시킬 것을 종전과 다름없이 또 한번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전이란 3년 전을 뜻했다. 소련은 그동안 중공가입문제에 침묵을 지켜왔었기 때문이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소련측이 보인 마지막순간의 대중공 선심은 개선되고는 있지만 그 과정이 불확실한 요즘의 중공·소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 준 것으로 주목과 흥미를 끈다. 금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가속하기 시작한 중공·소 관계의 정상화는 이미 다음 몇 가지 구체적인 결과를 성취했다.
①작년의 이른바 문화혁명시작 이래로 4년 동안 있으나 마나한 대리대사급에 머물러 있던 외교관계가 중공외 유신권과 소련의 「바실리·톨스티코프」의 임지부임으로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 ②지난 22일 북평에서 중공·소 무역협정이 체결됨으로써, 60년 초 중공의 대외무역액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가 거의 무(65년의 수출입고 20억「달러」가 69년에는 5천5백만「달러」로 감축)로 격감된·교역활동이 본 궤도에 오르게되었다. ③지난 11월6일 혁명기념일에 중공은 이례적으로 형식이 아닌 축하「메시지」를 보내고 양국간의 평화공존을 강조, 양국관계 개선의 전도를 밝혀줬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이념문제와 국경문제를 포함한 전략문제 등, 양국분규의 핵심면에서 양보가 이루어진 징후를 보여주지 못하는 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최근의 화해「무드」가 확실한 정책적 전환을 시사한다고 보기는 이른 것 같다.
냉전이래 가장 큰 국제적 정치사건으로 중공·소 분규가 표면화한 이래 69년3월에 있은 중공·소 국경 「다만스키」에서의 교전을 정점으로 악화되어왔다. 그 동안 이들은 이념·혁명전략·국가이익 등 양국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극렬한 대립을 보였기 때문에 양국관계는『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중공은 「사회제국주의 세력」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소련의 이념적 지도역할을 전적으로 거부했으며 소련은 중공의 독단적·호전적 교조주의를 공박하며 중공주변에 군사적 압력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서 소위 세계공산주의운동은 화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었다. 화해의 결정적 계기는 69년9월, 호지명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소련수상「코시긴」이 북평공항에 착륙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공항회견에서 ①긴장된 국경의 양국군대 철수 ②상호비난중지 ③대사교환 ④무역확대 등을 촉구했고, 중공측은 이러한 문제를 토의할 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11월 중공이 소련혁명기념일에 보낸 축하문에는 「중공·소 인민친선만세」라는 귀절까지 들어있을 정도로 분명한 호전의 징후가 보였다
소련의 선수로 시작된 화해기운이기는 하나 현재로서는 중공측의 양보에 의해서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처음부터 소련은 대사급으로 국교를 정상화시킨 다음에 국경문제를 이야기하자고 제의했고 중공은 외교정상화보다 국경문제 해결이 선행해야 된다고 버티었었다. 9개월간의 협상이 지난지금 국경회담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도 대사교환에 응낙한 것은 따라서 중공측의 입장완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완화가 중공·소 분규이전의 양국관계와는 전연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 양국관계의 전도에 한계성을 제기하고 있다.
문혁 이전과 이후라는 단순한 시기적 차이 이상으로 두 나라 사이에 그동안 일어난 일들은 깊은 상흔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공이 대소관계에서도 여타지역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우선은 실리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소련은 동구에서의 외교활동, 지난해 평양에서의 아주안보회의 소집제의, 월남전에서의 세력확대 등 일련의 활동을 통해서 중공이 그들의 가상적국임을 뚜렷이 밝혔다. 이점에 있어서는 중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핵 개발을 통해서 강대국의식을 성숙시킨 중공은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동남아 등지에서의 외교활동에서 독자노선을 굳혀 왔다.
이런 전후관계로 봐서 중공·소 국교는 이념을 같이하는 공산국가로서 이기보다 상호의 세력권을 운위할 수 있는 대등한 강대국으로서의 입장에서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속><장두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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