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청소년 금연 프로그램, 제대로 된 게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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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1 필자의 금연클리닉에서 만난 중학생 C양으로부터 요즘 청소년들의 흡연 실태를 듣게 됐다. 34명의 학생 중 남학생은 절반 이상, 여학생은 3분의1 정도가 규칙적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단다. 중산층들이 많이 거주하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학교이니 이를 우리 시의 평균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성인 흡연율을 훨씬 뛰어 넘는 수치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중학생 흡연율은 남학생이 9.8% 여학생이 4.3%다. 천안의 중학생들은 전국 평균보다 엄청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통계가 엉터리인가?

몇 년 전 단국대병원 금연클리닉에서 천안지역 일부 학교를 대상으로 흡연율 조사를 진행했다. 흡연율이 저평가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예산상의 문제로 소변 코티닌 검사 등을 시행하지 못하고 무기명 설문으로만 진행했다.

당시에 이미 성인흡연율에 근접하는 고등학교들이 있었다. 학교 당국과 대책을 논의했고 몇 학교에서 흡연 학생을 대상으로 금연 교육을 진행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런데 당시 필자를 더 힘들게 했던 부분은 일부 학교의 소극적인 응대였다. 학생들의 높은 흡연율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외부로 흡연율 통계가 알려질까봐 필자의 입 단속을 하는데 급급했다. 물론 이런 학교들은 이듬해 흡연율 조사도 거절했다. 병은 알려야 고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2 보건소의 요청으로 모 고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금연강의를 했다. 강당에 모아 놓은 아이들이 떠드는 것은 당연지사. 교장선생님 이하 무서운 선생님들의 협조로 겨우 분위기를 잡아가며 목이 아프게 아이들 흡연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겨우 강의를 마치고 강당을 나서는데, 한 남학생이 다가온다. “저는 정말 끊고 싶은데요. 친구들과 어울릴 때 정말 참기가 힘들어요.” “그래. 어른들보다 학생들이 오히려 더 끊기 어려울 수 있으니 아까 얘기한대로 보건소 금연클리닉에 등록해 꼭 도움을 받으렴.”

그런데 옆에 있던 보건소 직원 분 말씀이 미성년자인 학생이 금연클리닉 등록하려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단다. 세상에, 부모님 몰래 흡연하는 학생들이 훨씬 많은데 동의를 어떻게 받나? 아이를 한둘밖에 낳지 않아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아들, 딸들이 담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흡연 문제에 대한 교육당국과 보건당국의 수준은 이 정도다. 성인흡연자에게는 니코틴 보조제나 경구용 금연약이 도움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이 조차 적응이 되지 않는다.

결국 제대로 된 사전 예방교육과 애정, 인내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담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전국을 뒤져봐도 딱히 제대로 된 청소년 금연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미성숙한 아이들의 폐를 오염시키는 청소년 흡연은 군대 가서 배운 아빠 세대들의 흡연 피해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흡연 시작 후 폐암 발생 평균 기간이 25년이니, 불과 40대에 폐암으로 쓰러질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수수방관할 것인가?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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