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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테러 다국적 조직 소행 … 미국 아프리카 정책 구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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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소말리아 무장세력 알샤바브에 의한 케냐 쇼핑몰 인질 테러가 발생한 지 사흘째인 23일(현지시간) 케냐 군이 테러범들과 대치하며 진압작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사건 현장인 웨스트게이트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나이로비 로이터=뉴스1]

케냐 수도 나이로비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테러로 23일 현재(현지시간) 최소 69명이 숨지고 175명이 부상했다. 실종자도 63명에 이른다. 테러범들은 쇼핑몰에서 10여 명의 인질을 붙잡고 사흘째 케냐 군과 대치하고 있다. 케냐 군은 테러범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말리아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알샤바브는 21일 트위터에 자신들이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CNN 등 외신은 쇼핑몰을 장악한 테러범은 약 10명이며 이들은 미국인 3명, 소말리아인 2명, 캐나다·핀란드·케냐·영국인 1명씩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집단’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특히 이 중 1명은 ‘하얀 과부’로 불리는 영국인 서맨사 르트와이트(29)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생존자들은 인터뷰에서 “테러범 중 1명은 백인 여성이고 여러 명의 백인이 함께 있었다”고 전했다. 케냐에서 수배 중이었던 르트와이트는 2005년 영국 런던 지하철 테러를 주도한 저메인 린지의 아내다.

테러범에 미·영·캐나다·핀란드 출신 포함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범의 부인이자 나이로비 테러 가담자로 지목된 영국인 서맨사 르트와이트. 백인이어서 `하얀 과부`로 불린다.

 소말리아 22년 내전의 산물인 알샤바브에 이처럼 다양한 국적자가 포진한 것은 그동안 알샤바브가 구사해온 글로벌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3년 알카에다 연계조직으로 활동을 시작한 알샤바브는 2006년 이전까지 이렇다 할 활동이 없는 군소 조직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6년 소말리아 내전에 에티오피아 참전을 기점으로 조직 진화의 계기를 맞는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알샤바브는 이때부터 전장을 소말리아에서 세계로 확장했다. 자신들의 목표를 이슬람권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향한 싸움으로 규정하고 세계화를 꾀한 것이다.

 글로벌화를 위해 이들의 취한 가장 두드러진 전략은 다양한 국적의 조직원 영입이다. 이를 위해 유튜브와 각종 이슬람 커뮤니티 사이트에 참전 권유의 메시지를 띄웠다. 오사마 빈라덴 몰락 이후 방황하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출신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영입됐다. 이어 서방에서 성장한 소말리아 출신 해외파들이 가세하면서 다국적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미국 등 서방의 정보 당국은 알샤바브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인을 10% 정도로 보고 있다.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소말리아 출신 외국 국적자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중동계가 아닌 ‘순수 외국인’ 영입 시도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알샤바브는 특히 미국 본토에서 대담한 ‘전사 리크루팅’을 실시했다. 2011년 미국의회보고서에 따르면 알샤바브는 2007~2011년 미국인 40명, 캐나다인 20명을 영입했다. 특히 미네소타주의 소말리아 커뮤니티에서 전사 모집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미국 정보 당국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당시 모집된 미국인 중 절반은 소말리아에서 사망했지만 아직 15명이 남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계 아닌 외국인 영입해 글로벌화

 해외에서 유입된 인사들이 제공한 달러와 국제감각, 정보기술은 알샤바브 세력 확장의 주된 동력이 됐다. 이들의 활약으로 알샤바브는 소말리아 내전의 가장 강력한 반군 세력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조직 내에선 어느 정도의 국적별 역할 분담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출신, 아프가니스탄에서 훈련을 받은 소말리아 출신들은 군사 지도자 그룹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 서구에서 유입된 인사들은 선전용으로 적극 활용되는 반면 이번 테러가 발생한 케냐에서 영입된 조직원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전담하는 보병들이 많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조직답게 지도자급에 오른 외국인도 많다. 지난 6월 반대파에 의해 처형됐지만 해외파로 최고위급에 올랐던 시리아계 미국인 오마르 함마미가 대표적이다. 아부 만수르 알암리키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그는 2006년 소말리아 여행 중 자원 입대했고 해외감각과 지도력으로 빠른 진급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견제 세력으로부터 “자기도취에 빠져 인기만을 좇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젊은 무슬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현재 ‘알샤바브의 매니저’라고 불리며 돈줄을 쥐고 있는 샤크 무함마드 아부 파이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다.

 알샤바브가 케냐의 쇼핑몰을 테러 목표물로 택한 것도 이들의 세계화 전략과 맞물려 있다. 이번 테러는 표면적으로는 케냐의 소말리아 내전 개입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지만 진짜 표적은 미국이라는 분석이다. 나이로비는 미국의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아프리카 본부다. 이곳의 미 중앙정보국(CIA) 지부는 조직 면에서 아프리카 최대 규모다.

미 대테러전 아프리카 본부 공격 당해

 특히 1998년 알카에다의 나이로비 주재 미 대사관 폭탄 테러로 225명 사망, 4000여 명의 부상자를 낸 이후 이곳은 미국의 자존심과 같은 지역이 됐다. 이런 나이로비에서 알샤바브가 또다시 미국에 치욕을 안겨준 셈이다. 워싱턴 소재 민주정치 수호재단의 알샤바브 전문가 다비드 가르텐슈타인로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론 알샤바브가 케냐의 소말리아 파병에 대해 경고하려는 목적”이라면서도 “(알샤바브가) 미국을 끌어들이더라도 한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소말리아의 무장세력이나 아프리카 지역의 알카에다를 약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대테러 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알카에다와 소말리아 지역 무장조직 간의 연대에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2006년 이슬람법정연합(UIC)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했고 알카에다가 UIC의 통제권을 접수했다는 첩보가 날아들자 이듬해 공격기를 날려보내 이들의 근거지를 폭격하기도 했다. 알샤바브는 UIC의 분파 조직이다.

  이후 아프리카연합(AU) 군대가 소말리아에 배치되기 시작하자 버락 오바마 미 정부는 직접 교전을 피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소말리아 군과 AU군에 일상적 전투를 맡기고 간헐적인 무인기 공격이나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데 그쳤다. 미국이 직접 공격할 경우 알샤바브가 현지 미국 기관을 공격하거나 미국 내 소말리아인을 통한 테러를 저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런 미국의 소극적 대응이 토착 조직인 알샤바브와 알카에다의 결속을 강화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알샤바브 내분 단속하려 테러 자행”

케냐 테러가 알샤바브(로고) 내부 권력 투쟁의 결과라고 영국일간 가디언 등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알샤바브는 사건직후 이번 공격이 케냐의 소말리아 파병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 실상은 약화되는 조직을 단속하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리더 아흐메드 압디 고단의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알샤바브는 2년 전 소말리아 정부를 지원하는 아프리카평화유지군에 밀려 수도 모가디슈에서 축출된 뒤 소말리아 거점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단은 조직 내에서도 강경파에 속한다. 지난 6월 알샤바브 알아프가니 등 알샤바브 공동설립자 2명을 포함, 4명을 처형했다. 방해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리더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다. 이달 초에는 영국 국적의 우사마 알브리타니와 미국 국적자로 알려진 오마르 함마미가 고단 지지자들에게 살해되기도 했다. 함마미는 고단을 “독재자”라 비난해 왔다.

전영선·이충형·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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