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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질병…제2의 재난에 떨고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다카21일 UPI=본사독점특약】거목을 통째로 뽑아 올리는 회오리바람에 이어 삽시간에 들이닥친 대해일-. 20세기 최대의 천재를 당했던 파키스탄 남부의 해안일대는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풍경화처럼 을씨년스럽다. 광대한 면적을 휩쓸었던 해일은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증명이나 하듯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붐비던 저자거리는 몇 천년 전의 유적처럼 황량한 침묵 속에 잠겨있고 곡식을 일궈먹던 논밭에는 그토록 악착스레 매달려 살던 인간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널려있었다.
그러나 재난은 삽시간에 생명을 잃은 사람들만이 맞은 것은 아니다. 천행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에게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닥쳐오고 있다. 웅덩이의 흙탕물과 시체냄새가 코를 찌르는 몇 알의 곡식-. 그 위에 콜레라까지 겹쳐 놀란가슴을 가라앉힐 여유는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가장 심한 피해를 입었던 볼라 섬 주민들은 죽음의 물결 이 스쳐간지 6일이 지난 지금에도 단 한 섬의 구호식량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살아남은 몇십 명의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듯이 보였다. 『대기를 숨쉬고 있다는데 대한 환희보다도 가족과 논밭과 가옥 한꺼번에 잃어버린 데서 온 절망감』 이 앞섰기 때문일까….
들판과 길가에는 어디를 가나 썩어 가는 시체들뿐이었다. 가끔씩 생존자들이 있는 마을 앞을 지나노라면 막대기처럼 깡마른 소년들이 기자들을 향해 손을 내밀곤 한다. 볼라 지방을 현장 취재하던 기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얼마간의 「비스키트」를 전해주기도 했다.
대지 위의 생명을 축복해주던 태양은 이제 또 다시 작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뜨거운 햇볕아래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인간과 가축들의 처참한 분해작용-.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가면서도 기자들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노아칼리」와 「차드바타」간의 16㎞나되는 거리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호곡소리도, 소년들이 손을 벌리고 달려드는 풍경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수만 명의 주민이 한 사람 남김 없이 죽음을 맞은 때문이다.
이웃지방의 한 노인은『마치 연꽃들처럼 떠다니는 시체들을 뗏목 삼아』자기한목숨을 구했느라고 말했지만 해일을 바로 맞닥뜨렸던 해안지방에는 이러한 기적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만푸라」섬에서는 성장「아산」씨가 직접 나서서 구호본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구호본부의 첫 작업은 생존자들에게 베풀어지지 못했다. 한 톨의 양식도, 한 병의 약품도 아직껏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들이 벌이고있는 구호활동은 구호반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시체의 썩는 냄새를 없애는 것. 길가의 시체1구를 매장하는데 2루피(l백60원), 들판의 시체에는 반 루피(40원)씩을 주고있다.
「벵골」만 연안의 삼각주∼파키스탄 제1의 복지 위에서 이제 숨쉬는 사람들은 숨진 사람들을 묻으면서 양식을 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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