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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몰고온 바람 업계 자체개혁(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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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계에는 지금도 불황이 긴축정책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긴축을 풀기만 하면 경기는 서서히 나마 다시 회복될 것이라 믿고 있다. 설사 정부가 긴축을 크게 풀지 않더라도 내년 선거 때가 되면 자연 많은 돈이 흘러나올 테니까 사정이 좀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갖고있다.
확실히 지금의 시중자금난은 심각한 모양이다. 물건이 팔리지 않는데다 팔린다해도 거의가 외상이라니까 사정은 매한가지다. 시멘트업계의 체화는 크링카가 작년이맘때의 5배, 완제품이 2배다.
탈지업계의 경우, 보름 길어야 3개월이던 외상거래기간이 5개월로 늘어났다. 수요가 줄어들면서 그나마 유명 메이커 제품으로 쏠리는 모양인지 과거 40% 남짓했던 골덴텍스의 마키트·쉐어가 60%로 늘어났지만 그 자체 절대량은 감소됐다는 설명이다. 금성사와 대한 전선 등 몇몇 전기기기 메이커들 얘기로는 지금까지 거의 예의 없이 현금거래이던 자질구레한 가전제품과 각종 전기용품까지도 지금은 1개월 내지 3개월 외상거래다.
결국 저마다 판매에 열을 올리다보니까 현금거래대신 외상거래가 보편화하게 됐고 너나할것없이 자금이 달리게 되니까 회수마저 어려운 실정이 돼 버렸다.
지난 9월말까지의 올해 국내여신증가율은 작년중의 38%와 비교해서 절반도 못되는 16.2%. 긴축의 정도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수치다. 여기에 자금회전속도가 줄어드니까 자금난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불황의 근원을 전적으로 긴축에만 돌릴 수 있을까? 경제계에는 결코 『그렇잖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차차 늘어나고 있다.
전경련의 금립삼전무는 『경제의 규모와 체질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경제정책과 기업의 경영자세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GNP 규모가 1백억 불을 바라보게 됐는데 제 정책 내용은 아직도 30억불 때와 변동이 없으며 거래단위금액의 증가와 동시에 내구소비재증가로 현금거래대신 신용거래가 확대될 단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이에 적응할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업과 금융기관, 정부와 기업, 기업과소비자간의 엄청난 거리, 소비자보다 기업이, 기업보다는 정부가 더딘 현실에 대한 반응도 내지 달라진 현실에 대한 적응속도 등이 문제라는 얘기다.
한편 윤태섭 사무국장은 『시장협소·고금리·고세률·도입외자에 대한 원리금 상환부담』 등을 주요원인으로 열거했다.
각종섬유·시멘트 자동차 및 유리공업 등이 모두 공급과잉에 신음하고있는 저간의 사정이 이를 뒷받침해주며 작년까지만 해도 가장 주요한 통화증발 요인으로 지목돼왔던 해외부문이 어떤 점에서 환수요인화했다는 사실은 외자기업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막중하다는 증거다. 또한 얼마 전에 한국을 다녀간 미 SRI산하 실업인 한 사람은 『한국과 같은 고금리 하에서 이익을 내는 기업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비단 직물업계뿐이 아니겠지만 금년부터 원료과세가 제품과세로 전환되는 바람에 직물업계는 같은 세율(30%)이면서 세액부담이 3배로 늘어나 경기 면에서 세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업종의 하나로 지적되고있다.
이밖에도 업종별로 특수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건축자재경기가 비교적 괜찮다는 편이라지만 건축주들의 기호변화로 페인트·타일 등 일부 내장용 자재업계만 재미를 보고있는 형편이고, 기계공업자금 방출이 비교적 풍성하고 수입억제 등 정책적인 배려 때문에 기계공업계가 다소 사정이 나은 편이라지만 설비투자가 저고하고 자동차등의 최종제품판매가 부진하기 때문에 기계공업계의 사정도 품종과 업체에 따라 다르다. 또한 고속 연륜 율이 괜찮지만 그것이 다른 업계에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별로 없다.
결국 경제정책의 기조가 팽창 일로의 확대정책에서 안정화를 다지는 축소균형을 지향, 금융긴축 등의 안정화조치가 단행됐으나 전체적 정책 무드는 이에 빗나가고 금리 등의 제반세부 시책 또한 구태의연하여 조화를 잃은 것이 불황의 외연을 이룬다면 그 동안의 정부시책에 편승, 무모할이 만큼 격심했던 확장경쟁의 주름살과 개개기업의 정세기화에 대처하는 태세가 때늦고 미흡했음이 기업 내부적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소비증가 템포의 둔화와 패턴의 변화는 이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요컨대 대체로 모든 업종이 불황을 겪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여기서헤어날수 있을까 고심하고있다.
기업의 자체개혁은 당장의 불황대책과 또 장기적이며 보다 긴 안목에서의 경쟁에 적응하려는 것인데 그것이 용이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건 단행하게된다면 대부분이 판매활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하며 감원대신 판매분야의 인원을 확대, 보강하는 방법을 택해야겠다는 것이다. 제1모직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었고 선경은 그룹산하 회사 폐합 작업과 관련해서 이를 단행했다. 낙희 그룹과 대한전선 등도 장차 감원은 없을 것이지만 판매활동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노력에도 불구하고 업계각분야가 안정 무드를 회복하기까지는 분야마다 각기 상당수의 기업들이 『도태의 비운을 겪을 것이 불가피하고 또한 필요하다』는 관계자들의 비교적 공통된 전망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기업들이 이번 기회에 체질을 강화하게만 된다면 불황은 한국기업의 강대를 위해 『값진 시련』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재계인사들은 말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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