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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3선 떼놓은 당상 … "우파연정 위해 자민당 찍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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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독일 총선이 치러진 22일(현지시간) 출구조사 결과 기민당이 42%를 득표하자 베를린의 당사에 모인 당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베를린 로이터=뉴스1]

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리가 ‘3선 총리’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22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 결과다.

독일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리가 3선 이상을 한 경우는 콘라트 아데나워(1949~63 재임)와 헬무트 콜(1982~98)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메르켈의 정치적 입지는 이번 선거에서 오히려 약화돼 험난한 앞날을 맞을 전망이다.

 출구조사에서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기민당과 바이에른주의 자매정당 기사당은 42%를 득표, 압도적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기민·기사당의 보수 연정 파트너였던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은 4.7~5.0%로 하원(분데스타크) 비례대표를 할당받을 수 있는 하한선인 5% 획득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종 개표 결과 자민당이 하원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기존의 기민·기사·자민당 간 보수우파 연정은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선 보수층이 자민당 득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투표에 나서기도 했다. 베를린 라인하르트 슈트라세에서 투표한 30대 부부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부인 피아 트로브스키(38·의사)는 “메르켈 총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당 투표에서 맘에 들지 않는 자민당에 한 표를 줬다”고 말했다.

 독일의 유로존 탈퇴까지 주장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출구조사에서 4.9%로 원내 진입 가능성을 보였다. 창당 7개월밖에 되지 않은 반유럽 정당 AfD가 이 정도의 성과를 실제로 얻을 경우 메르켈로서는 기존의 유로존 정책을 재고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 지원 논의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자민당이 5% 득표에 실패할 경우 메르켈은 다른 정당들과 연정 협상을 벌여야 한다. 25.5~26.0%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도좌파 사민당과의 좌우 대연정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민당이 대연정 참여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새 정부 구성에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은 처음 집권했던 2005~2009년에도 대연정을 이끌었다. 당시 재무장관직을 사민당에 내줘야 했고, 경제 정책을 둘러싼 마찰을 겪었다. 그때 재무장관을 맡았던 이가 이번 총선에서 메르켈의 라이벌이 된 페어 슈타인브뤼크(66) 사민당 총리 후보다. 슈타인브뤼크는 “기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해도 나는 내각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대연정 성사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발언이다.

 대연정은 메르켈이 고집해온 긴축기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사민당은 성장우선 정책을 강조한다. 소득세 증세, 전국 단위의 동일 최저임금제 도입, 공공시설 투자 확충 등도 공약했다. 그리스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은 독일의 대연정을 바란다. 독일의 긴축 압박 완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사민당이 연정파트너로 여기고 있는 녹색당은 8.1~8.5%에 그쳐 적녹연정 구성은 어렵게 됐다.

 ‘독일판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3선 메르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인으로 활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르켈의 최대 무기는 대중적 인기다. 그는 기민당의 득표 전망보다 훨씬 높은 60% 안팎의 지지를 유지해왔다. 유로존 위기 가운데 ‘단계적 해결’을 강조해 유럽 차원에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독일 내에서의 지지도는 견고해졌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베를린 중앙역에는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는 메르켈의 손을 부각한 대형 포스터가 내걸렸다. 포스터에 얼굴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기민당 대변인 필리프 미쉬펠더는 “신중하고, 사려 깊고, 겸손하고, 묵묵히 다른 사람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메르켈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이렇다 할 새로운 정책을 내놓지 않고 메르켈의 이미지만 앞세웠다.

한경환 선임기자, 베를린=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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