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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환경의 개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13일 하오 서울 시내 중구 청계천6가에 있는 평화시장·동대문 시장·통일상가 등의 종업원 5백여명이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데모를 벌이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자 재단사 친목의 대표 전모군이 근로기준법 해설 책을 껴안고 분신 자살하여 허술한 근로기준법의 집행면에 경종을 울렸다.
전군으로서는 그 밖의 온건한 방법으로도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촉구할 수 있었을텐데 하필이면 휘발유로 분신 자살한 것은 애석하기 그지없으며, 동료들의 처우개선을 위하여 희생한 그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그가 근로조건의 개선을 위하여 노력해 오다 업주들의 불성실한 태도에 항의, 농성을 벌인 끝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항변을 한 것은 우리 사회의 서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들의 작업장 주변을 보면 좁고 환기장치조차 없는 1.5m 높이의 방에, 평당 4명씩이 미싱을 등에 지고 일을 했다고 하니 그 작업환경이 어떠했을까는 가히 짐작이 간다.
2만8천여명이 하루 평균 13시간에서 15시간 근로해 왔으며, 대부분이 조명도가 모자라고, 분진이 날으는 유해환경 때문에 눈병·신경성 위장질환·폐결핵 같은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1만3천여명이나 되는 13∼15세의 소녀조수나 견습공들은 월급이 겨우 3천원 밖에 안 되는 형편이며, 13시간 내지 15시간의 근무에도 초과수당 한푼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만성화한 근로기준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근로자들은 그 동안에도 몇 차례 시정을 서울시와 노동청 등에 진정했었으나 노동청은 근로시간이며 임금 등 근로조건의 철저한 시정조치에는 무성의하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만 사업주들에게만 오는 11월말까지 사업장의 분진과 조명을 개선하고, 건강진단을 실시하라는 미온적인 지시를 했었다고 한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13세 이상 16세 미만자의 근로시간은 1일에 7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돼 있고, 보사부의 인가가 있는 경우 2시간 이내로 연장할 수 있으며, 여자와 18세 미만자는 야업이 금지되고 18세 이상의 여자에 대해서도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은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근로시간을 위반하면 2년 이상의 징역이나 6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근로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을 두고 근로감독관은 그 위반자를 검찰에 고발 조치할 수 있는데도 이를 알면서 시정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사실이지 일부 기업주들이 말하는 것처럼 법에 정해진 근로조건의 철저한 이행이란 현 여건 하에서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여 근로기준법의 규정을 무시하는 것도 묵과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특히 병장의 취업금지 규정이나 여자와 소년의 근로시간 제한만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의 최저임금 조항에 따른 대통령령도 하루 속히 제정하여 근로자의 이익을 확보해 주기 바란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는 19세기와 달리 근로자의 권익보호라는 사상 위에 이룩되고 있으므로 근로자의 이익옹호를 위해서도 정부는 영세기업주들이 기업합동 등을 권장하여 생산성도 높이고 근로자의 이익도 확보하도록 규제와 조정을 다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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