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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으로 돌아간 문단 터줏대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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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 문학과 문단의 마당쇠이자 터줏대감을 잃었다."

소설가 이문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 몰려든 문인 등 문화예술인들은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쏟아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소식에 어제, 그제 병상을 찾아 李씨의 손을 붙들고 다 꺼져가는 말로 인사를 나누며 슬픔을 참았었다. 그들이 이제 "여한 없이 살다 가신다고 했으니 여한없이 잘 가시라"며 슬픔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5일 병원 측으로부터 "이 세상에 정리할 것 있으면 정리하시라"는 통보를 받은 李씨는 그날로 집으로 가 마지막 원고를 손질해 동시 60여편의 동시집과 산문집 한권 분량의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 세상과의 거래를 끝냈다.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감사와 충고를 전하고 싶은 선.후배 문화예술인들을 불러 인정도 정리했다.

"산에는 산새/들에는 들새/물에는 물새/들고 나는 새/하고많아도/울음소리 예쁜 새는/열에 하나가 드물지./웬일이냐고?/이유는 간단해./듣는 사람이/새가 아니란 거야."('새'전문)

세상에 있는 말로는 양이 안 찬다며 새로 말도 만들어서 긴 만연체로 쓰던 소설과는 정반대로 李씨는 위와 같이 단순하고 명료한 동시로 마지막 투병을 하고 있었다. 출판사로 넘긴 동시집의 제목도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로 마음 속에 정해놓았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고승대덕(高僧大德)의 말씀과 이 동시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있는 것을 있는 것 자체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마음으로 돌아가 李씨는 죽음도 순연하게 맞아들인 것이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며 "내 이름을 딴 어떤 추모사업도 벌이지 말고 무덤도 쓰지 말 것이며 어릴적 뛰놀던 고향 관촌 뒷동산에 뿌려달라"는 유언과 함께 숨을 놓았다.

유년시절과 전통적 유학자 집안이 남북 이념대립에서 빨갱이로 몰락한 집안 내력을 서구 소설 양식에서 벗어나 동양의 열전 형식과 수필 양식으로 넓힌 출세작 '관촌수필'의 고향, 충남 보령의 관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의 문체는 평단 전체가 달라붙어 연구해도 모자랄 그런 풍요로운 숲"이라고 일찍이 김지하 시인은 말했다. 다른 작가와는 다른 이야기, 형식, 언어, 문체를 부단히 개발한 그는 진작부터 스승인 김동리에게서 '우리 문단의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란 평을 들었다.

李씨는 문학이 풍요로웠을 뿐만 아니라 좋은 관계로서 '가장 풍요로운 인간의 숲'을 이뤘다. "당신의 한 작품 제목처럼 '이 풍진(風塵) 세상'에 와 남의 먼지 다 씻겨주고 당신에게서는 먼지 하나 안 날린 분"이 李씨 아니냐며 진보.순수 문단, 재야.보수 문화계 등 이념과 경향을 뛰어넘어 많은 인사가 조문을 와 李씨의 포용력을 덕담으로 나누고 있다.

김동리와 서정주의 제자로 보수.순수문단에서 시작해 1970년대부터 진보.참여문단을 이끈 李씨. 그는 진보 문단 수장으로 있으면서도 보수 문단을 배제가 아니라 포용하며 함께 일해 나가고자 애썼다. 해서 "문학의 경향.파벌 다 아우르며 포용한 분은 문단사상 李씨밖에 없다"며 그동안 갈라섰던 한국문인협회.민족문학작가회의 등 모든 문학단체가 함께 문인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흑백논리로 가차없이 선배.동료.후배 할 것 없이 재단, 처벌해버려 덕성이 사라졌다. 스스로 서로를, 상대방을 감싸 안아줄 때 본래의 덕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李씨가 병석에서 해준 이 말은 오늘 같은 '배제의 시대'에 더욱 크게 울린다.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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