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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추석'이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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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여 즐거움을 나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 추석 연휴가 내일 시작된다. 추석, 즉 중추절(仲秋節)은 ‘가을의 한가운데’ ‘가을 중의 가을’을 의미한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중추절은 가을을 초추(初秋)·중추(中秋)·종추(終秋)로 나눴을 때 추석이 음력 8월 중추에 해당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추석은 한가위 보름달처럼 알이 꽉 찬 곡물을 수확하기 직전 그동안 농사를 잘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명절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추석은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 같지 않다. 올해 추석이 9월 19일, 내년은 9월 8일인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상 여름에 가깝다. 가을의 한가운데라기보다 곡물이 막 익기 시작하는 늦여름에 추석을 보내고 있다. 음력을 쓰다 보니 매년 추석 분위기도 다르다. 2006년 추석은 10월 6일이었는데, 내년에는 9월 8일로 무려 한 달이나 차이가 난다. 연휴 기간도 짧았다 길었다 변화가 심하다. 과연 이런 추석 제도를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은 것일까?

 이른 추석은 민생에도 여러 부작용을 초래한다. 우선 국민 건강에 유익하지 않다. 품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과의 생산 적기는 10월 하순, 배는 10월 초순이다. 과일 생산 시기가 최대 수요가 발생하는 추석과 맞지 않다 보니 농가에서 출하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생장촉진제를 쓴다고 한다. 차례상에 생장촉진제를 쓴 농산물이 올라온다는 것인데, 이것이 국민 건강에 도움 될 리가 없다.

 둘째, 고물가로 서민 경제에 부담을 초래한다. 9월에는 곡식과 과일의 수요는 많지만, 공급은 모자라다 보니 물가가 올라간다. 한 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추석이 계절상 여름에 속했던 해의 9월 농산물 물가 상승률의 평균은 5.7%였다. 추석이 가을에 속했던 해의 평균인 2%와 비교해 거의 세 배에 달한다. 추석 고물가는 매년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접하는 단골 뉴스가 됐다. 특히 올해는 이른 추석에다 역대 가장 길었던 중부지방 장마와 남부지방 가뭄까지 겹쳤다. 공급 부족에 기상이변까지 더해져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셋째, 농촌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추석이 끝나고 양력 10월이 되면 곡식과 과일이 본격적으로 출하된다. 맛과 영양에서 가장 뛰어난 품질을 자랑할 때지만 시장에서의 가격은 여지없이 폭락한다. 그렇게 높았던 추석 물가가 막상 추석이 끝나니 수요가 줄어서 농가 소득 안정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음력 추석을 개선하는 논의를 시작해보자. 전통의 의미를 계승하면서, 기후 변화로 인해 달라진 현재의 상황을 반영한 추석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을 주요 농산물의 수확이 끝나는 10월 중순의 양력으로 옮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국민들은 값싸고 품질 좋은 과일을 먹게 되니 건강에 좋고, 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농촌에서도 추가적인 비용과 노력이 발생하지 않고, 제철에 제값을 받을 수 있어 소득 안정 효과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양력 명절이 전통과 다르고 보름달이 없다는 정서적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과거 우리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 썼던 24절기가 사실은 양력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제사·생일 등에는 음력을 사용했지만, 막상 경제활동에는 계절에 일관성이 있는 양력을 썼던 것이다. 오늘날 추석이 갖는 경제적 효과를 고려할 때 양력으로 옮기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삶과 크게 동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과 중국도 사실상 추석을 양력으로 쇠고 있다. 일본의 추석에 해당하는 ‘오봉’은 양력 8월 15일로 수확에 대한 감사보다는 성묘의 의미가 커서 농산물에 대한 일시적인 대량 수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은 고향 방문이나 성묘가 양력 10월 1일 전후 건국기념일 연휴에 이뤄진다. 건국기념일 명절에 농산물 수요가 집중되긴 하지만 시기가 양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급과 수요가 맞아떨어진다.

 가을의 한가운데서 건강하고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을 위해 지금부터 양력으로 추석을 옮겨보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의 본래 의미도 되살아날 것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