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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국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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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벨상의 70년도 수상자들이 모두 발표됐다. 언제나처럼 고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화학상의 루이·를로아르 박사는 세 번째로 노벨상을 탄 아르헨티나 인이다. 알벤 교수는 스웨덴 인으로는 세 번째로 물리학상을 탔다.
루이·넬 박사는 물리학상으로 프랑스에 영광을 가져다 준 여덟 번째 사람이다.
그런가하면 『푸른 혁명』으로 평화상을 탄 볼토그는 64년에 수상한 마틴·루더·킹 목사의 뒤를 이은 열 다섯명째의 미국인이다. 또한 의학상을 탄 스웨덴의 오일러 박사의 아버지도 지난 29년에 화학상을 탄 적이 있다. 펄·버 여사가『대지』로 문학상을 받을 무렵부터 노벨상이 정치화됐다는 혐의를 받고있다. 그래도 노벨상처럼 개인이나 국가에나 자랑스러운 것은 없다. 그것은 국력이나 문화수준과 국수관계에 있는 것도 같다.
노벨상이 생긴 1901년부터 2차 대전 전야까지의 39년 동안에 42명의 독일인이 노벨상을 탔다. 두 번째로 많이 받은 영국인은 31명이었다. 세째는 프랑스의 25명, 네째가 미국의 23명, 소련은 러시아시대를 합쳐 3명뿐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에는 판도가 완전히 뒤바뀐다. 미국이 79명으로 단연 앞을 달리고 있다. 두 번째는 영국의 32명. 전전에 수위였던 독일은 14명으로 세 번째로 떨어진다.
세 번째이던 프랑스는 12명으로 네째가 되었지만, 그 중의 여덟 명이 문학과 평화상이었다. 소련은 아직은 9명밖에 안 된다.
또 하나 주목할 일은 타고르가 문학상을 탄 이외에는 한 명도 수상자가 없던 동양에서 지난 10년 동안에 2명의 일본인과 2명의 중국인 물리학자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도…? 이렇게 내일에 기대를 걸어 보는게 당연한 우리네 심정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도 우리는 과학에 어두운 것 같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을 탄 작품이나 문학자에 대해서는 크게 보도된다. 다른 분야와 수상자들에 대해서는 두어 단정도의 지면만이 할애될 뿐이다.
이번에 의학상을 받게 『신경 말초 부에 있어서의 전달물질의 발견』은 실로 획기적인 업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설기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우리네 문화의 낙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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