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사람] 정년퇴임하는 신호철 AP통신 기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시도 때도 없이 취재를 하고 기사 쓰느라 30여년 세월이 흐르는 것도 잘 몰랐습니다. 힘도 들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을 직접 취재한 신호철(申昊澈ㆍ63) AP통신 기자(뉴스 에디터)는 "비록 회사는 떠나지만 기자로서 현장을 떠날 생각은 없다"며 "통신원 같은 직책을 맡아 계속 국내 뉴스를 해외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폴 신(Paul Shin)'이라는 영문 이름으로 더 유명한 그는 이번 주말로 정년퇴임을 한다.

외국계 통신사들의 국내 진출이 시작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국내 뉴스를 전 세계에 전파해 온 申기자는 국내 외신 기자들 사이에선 '거목'으로 불린다.

함께 활동했던 기자들은 이미 은퇴한 지 오래지만 그는 최근에도 후배들의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취재를 꼼꼼하게 지휘해 세계적 이슈로 부각시키는 등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申기자가 언론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65년. 대학시절 학군장교(ROTC)를 지원해 통역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것이 계기가 돼 영자신문인 코리아 헤럴드에 입사했다.

이 신문에서 4년여 동안 기자 수업을 한 그는 '이왕이면 세계를 상대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계 통신사인 UPI로 옮겼다. AP로 스카우트된 것은 86년의 일이다.

초기 국내 외국계 통신사들의 근무 환경에 관한 그의 회고를 듣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우선 당시엔 AP.UPI.AFP.로이터 등 이른바 4대 통신사만 국내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외신의 기능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낮아서 취재가 힘들었다고 한다.

회사 이름을 밝혀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정도였다. 또 기사를 보낼 수단이라곤 무선통신을 이용한 텔레타이프뿐이었는데 날씨가 흐린 날이면 기사 전송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다고 한다.

게다가 명색이 외신기자인 그의 집에도 70년대 중반까지 전화가 없어 '김대중 납치사건'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지 못해 본의 아닌 낙종도 경험해야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그 폭이 넓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낀다고 했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본사와 다른 나라 기자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사는 남북 전쟁 위기나 국내 정치 테러, 반독재 시위 같은 것들뿐이었는데 8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문화 방면 등에서 다양하고 많은 뉴스를 요청하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80년 2월 존 위컴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의 한국군 1사단 방문을 취재한 것. 위컴 사령관은 12.12 이후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위로품을 보냈을 정도로 신군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사단장을 지낸 1사단을 방문한 것은 신군부를 미국이 승인하는 첫 신호라고 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국내 정치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사화 했다'는 죄목으로 과거 군사독재 시절 정보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는 申기자는 또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만 봐도 우리 사회가 예전에 비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불리한 소식을 해외에 전할 때 망설임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외교관이 아니라 기자"라며 "망설임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공정보도를 최대 원칙으로 일해왔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