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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의 속결처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2천1백40종의 각급 민원사무의 처리기간을 대통령령으로 일괄규제, 법제화기로 했다. 대통령령으로 처리기간이 정해진 민원사무는 ①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민원 ②출원이 빈번한 민원 ③처리과정에서 부정의 개연성이 있는 민원 ④공공이익과 직결되는 민원 ⑤기타 주요민원으로 구분했다.
정부가 각급 민원사무의 처리기간을 법정하여, 예컨대 여권발급은 2일 내로, 영업허가는 7일 내로, 호적등본·주민등록은 즉시로 해 주도록 민원정무의 속결처리를 촉구코자 한다는 것은, 그 취지로 보아 환영할만한 일이다.
왜 그런고 하니 국민의 대 정부 접촉이나 교섭은 주로 민원의 형식을 취하기로 되어 있는 것인데 지금까지 민원사무의 처리기간이 명확히 법정화돼 있지 않았던 탓으로, 민원사무를 다루는 관청이 그 처리를 부당하게 지연시켜 국민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많은 불편을 주어 민원이 바로 [민원]의 원천인 것 같은 인상을 주어왔었기 때문이다.
대저 민원사무를 처리하는 관청이나 공무원이 민원의 속결을 되도록 피하고, 의식 혹은 무의식리에 그 지연을 꾀하는 폐단이 생겨난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관청에 따라서는 민원사무를 다루는 공무원의 수효에 비해 사무량이 지나치게 많아 사무속결을 하기 어려웠다는 객관적인 사유를 고려에 넣는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국민적 입장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주관적 사유가 적어도 두 가지 도사리고 있다.
그 하나는 공무원의 의식구조의 문제인데 공무원은 그 맡은바 민원사무를 신속히 처리하여 국민이 공민생활을 해 나아가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어야할 의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관료주의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민원사무를 처리하는 것이 마치 민원당사자에 대해서 은혜나 베풀어주는 것 같은 특권의식 속에서 집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민원사무를 맡고있는 공무원들이 사무처리를 되도록 지연시킴으로써 이에 초조해진 민원당사자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아들여 이른바 [벼슬 덕]을 톡톡히 보자는 부패근성에 젖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민원서류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그것에 대한 결재를 지연시킴으로써 민원당사자는 손실을 보기마련이다.
그는 결국, 시간을 벌기 위해 돈을 뒷구멍으로 주게되고, 공무원은 불법·부정 축재를 하게 된다. 이는 비단 우리 나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 후진제국에서 [스피드·머니]라고 불리는 부패의 전형적 현상이지만 우리는 이 [스피드·머니]를 주고받는 경쟁에 있어서 우리 나라가 별로 뒤떨어져 있지 않은 형편에 놓여 있음은 슬프게 생각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관료주의적인 사상이나 집무작풍 서류결재를 지연시킴으로써 돈벌이를 하는 부패근성은 너무도 깊은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짧은 시일 내에 제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종 민원사무의 처리기간을 법정하면 서류의회전과 결재는 상당히 빨라질 것이고 처리기간을 넘는데 대한 책임을 엄격히 추궁하는 제도상 조처를 아울러 강구하면 민폐는 많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면서 약간의 기대를 걸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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