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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동 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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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대중씨를 대통령후보로 뽑은 신민당은 선거체제룰 짤 11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중동의 모색을 한다. 전당대회 연기론, 노소장의 조화, 주류 비주류의 융화, 신당이나 재야세력과의 관계조정 등 안팎에 깔린 과제도 많다. 물론「40대」에 대한 기대감 같은게 작용해서 김대중씨가 지명되었으므로 앞으로의 당의 체제가 이들 40대 지지세력 중심으로 지탱되리라고 봐야하지만 당내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지금까지는 지도체계의 개혁을 피하고 다만 오는 정기 전당대회 때까지 임기가 끝나는 정무위원을 개선하는 정도의 지도부 개편으로 끝내자는 주장이 유력하다. 양일동씨 등 주류일부와 김대중씨계의 일부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이 주장은 다만 현재의 정무위원수 21명에 10을 더 늘러 30명선으로 확정할 것도 내세우고있다.
정무위원 수를 늘리게 되는 경우 각파는 그 자리를 사전에 안배할 것이 틀림없다.
전당대회가 연기되든 아니되든 간에 그 대회가 큰 말썽없는 회의가 될 것은 틀림없지만 지명대회에서 나타난 표의 집산과 또 그 뒤에 있는 집단 지도제론·재야단론으로 미루어보아 그것이 비록 당내의 주등적 여론이 아니더라도 선거 때까지의 이 부담을 이번 전당대회가 완전히 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명대회에 나타난 표의 집산은 계파정치의 한계를 보여준 느낌이다.
1차 표결결과 (재석 8백85표 중 김영삼씨 4백20표, 김대중씨 3백28표, 무효표는 백지투표 76표를 포함해서 29표)는 1차투표에서 김영삼씨가 근소한 차로 과반수를 얻을 것이라는「일방적예상」을 뒤 엎은 것이었다. 12일 중앙상위에서 김영삼씨 천거를 공표, 지지를 호소했던 유대표의「권위」문제라는 말이 대의원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2차투표는 유대표의 신임투표 성격을 띠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김대중씨계는 21일 저녁 「뉴·코리아· 호텔」에서「김후보 격려의 밤」을 열어 기세를 올리고 그동안의「표 줍기 작전 결과」를 주류 4백10∼20표, 김대중씨계 3백80표로 분석, 부동표 흡수에 온 힘을 쏟기로 했다.
김씨계의 표 예상은 1차 투표에서 거의 적중했다.
김후보는 21일 밤 자신의 지지표 3백80도를 『계파에 관계없이 나를 개인적으로 지지해주는 표』로 분석하면서 『대의부의 개별접촉을 통해 세력권을 더 넓혀 갈 수 있는 자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함 전야만해도 그의 자신을 믿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차투표에서 아무도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김후보 이외에는 정해촌총무와 박병배 정책심의회의장 등 극소수였다.
6백표를 예상했던 주류표가 1차투표에서 4백20표밖에 안나온 것은 나머지 1백80표가 떨어져 나갔음을 말해 준 것이다.
이 1백40새표를 주류의 어느 중진은 사일런트·머조러티(무언의 다수)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류의 표는 ①고흥문·김영삼·신동준씨 등 진산계 ②양일동·윤길중씨 등 신주류 ③정해영·김재광씨등 구 신한계 그리고 ④이철승씨계까지를 가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후보지명대회를 전후해서 진산계가 김영삼씨를 민 고흥문씨계와 유대표를 민 이른바 신주류와 신동준씨 등의 「직계」 로 나누어졌다는 얘기고 주류형성 때문에 표모으기가 여의치 못했다는 것이다.
○…2차투표 결과는 김후브가 4백58표로 1차투표 때보다 76표를 더 얻어 과반수를 넘어 승리했고, 김영삼씨는 11포가 더 적은 4백40표를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1차투표 때의 일지 투표초표(입표 중 6표는 낙서 등으로 무효표)가 고스란히 김후보에게 몰린 것이다.
김후보가 역전승을 거두자 각서·서약서·약속 등 이른바 공약에 대한 보도를 나무라는 소리들이 뒤를 이었다. 그 하나는 9월27일 유대표와 고사무총장 앞에서 김영삼씨와 이철승씨가『유대표가 택일한 사람을 서로 밀기로 서약 서명』한 서약서이다. 그래서 대회 날 이철승씨계가 김대중씨를 민 것은 서약위반이라는 것이 김영삼씨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씨는 『김대중씨 지지를 지시한바 없으며 자신의 지지세력들이 멋대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으며 이씨계 사람들은『서약서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약속이지만 서약서 이전에 유·이 양씨 사이에 정치적 약속이 있었으나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약서만 가지고 영약론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대회전날인 20일 밤 작성됐다는 이재형·양일동·김영삼 3씨간의 각서. 그 내용은 김영삼씨를 「가후보」란 조건으로 해서 범야 후보추대에 의견을 같이해온 이씨와 양씨가 당사자인 김씨를 끌어넣어 만든 것으로 『김영삼씨를 밀기로 약속했다』 는 것이다.
그래서 양씨와 김씨는 『이씨는 겉으로는 김영삼씨 지지를 암시하긴 했으나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으며 자파 안에 김대중씨 지지자들이 6대4의 비율로 우세한 것을 알았으면서도 김영삼씨 지지 「버튼」을 끝까지 누르지 않았다』는 게 양씨나 김씨계의 주장이다.
특히 2차 투표직전, 대책을 묻는 어느 측근에게 『훑어야지, 제값을 해야지』라고 해서 그 측근은 김영삼씨에게 간표의 회수지시로 이 말을 받아들였다는 뒷 얘기다.
이밖에 김대중씨가 이철승씨에게 보낸 명합각서라는게 있지만 이것은 당권 같은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라 「협조」만을 약속한 것.
○…지명대회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당권을 어떻게 조정하고 선거는 어떻게 치를 것이며, 나아가 선거후의 당권과 75년 선거의 후보까지가 머리에 남게됐다.
대회가 끝난직후 대내외에선 후보중심으로의 지도권 개편이 불가피하리라고 보는 사람이 많았으나 역시 진산계가 당의 주력계파이고 또 당권투쟁이 당의 「이미지」 룰 손상할 것이라는 것 때문에 개편론은 많이 숙어졌다. 김후보 자신도 주류와의 평화공존을 희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후보가 강력한 유일 야당의 후보이기 위해서는 재야측의 지지가 있어야하고 특히 신당(국민당)측의 견제가 배제되어야하는데 그 사건은 그다지 밝지 않다. 신민당 후보가 당내 절차만으로 결정됐다는 사실과, 또 신당측에선 신민당의 일부지도후 제거를 제반조건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외 분위기가 신민당 안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계기에 후보조정론이나 지신이 나온다면, 되기도 어려운 일에 잡음만 일 것이기 때문에 신민당 사람들은 이를 경계하는 것 같다. <박석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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