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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루나」16 달 연착과 미소 자주 경쟁|무인 원격 조정평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소련은 처음으로 중인 달탐행선을 달에 착륙시켜 달암석을 채조해 가지고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지난 69년7월「아폴로」 11호의 달착륙에 앞서 무인으로 달에 착륙시켰다가 무인으로 달암석을 채취함으로써 미국의 쾌거에 물은 끼얹으려 했었다는 루나호의 실패 이래 11개월의 침묵을 지켜오던 소련은 지난 11일「루나」16호를 발사하여 드디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첫 인공위성발사에서 미국을 앞지르게 되자 소련은 다음 목표를 달 경쟁에 두고 무서운 집념으로 달탐사를 계속해왔다. 이리하여 59년 9월11일엔 루니크2호로 달을 명중시켰고 59년 10윌7일엔 루니크3호로 하여금 달주위를 돌게 하면서 간고의 신비를 지니고 있던 달이면 사진을 찍는데 성공했다. 이와같은 달탐사선들은 그뒤 루나·시리즈의 일환으로 계속 발사되면서 달에의 첫연착, 달주위를 도는 첫 손자위성 등으로 미국을 압도했다.
그에 비하면 소련보다 약5년이나 늦게 달에「레인저」7호를 명중시켜 근접 사색을 했었던 미국의 자주계획은지지 부진한 것이었다.
소련은 이미 공산혁명 50주년이었던 67년 10에달에 유인자 시선을 착륙시킬 것이라고 생각 되기까지 했다. 달탐사 경쟁에서 미국을 압도한데다가 금성탐사 등에 실질적으로 보아일렉트로닉스 (전자공업) 의 수준도 높은 것으로 짐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과 미국과의「갭」은 작년께부터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68년에 크리스머스를 전후하여 미국의 쏠로 8호가 세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달주위를 돌고 오면서부터 드디어 소련은 처지기 시작했다. 그뒤 69연7월1일에 아폴로 11호의 두 자주비행사가 45억년 처녀지인 달의 땅을 밟은 「세기의 쾌거」가 있었던 것은 세인의 기억에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을 것이다.
이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3일전에 소련이「루나」15호를 발사했을 때 전문가들은 무인으로 달에 착륙시켰다가 전인으로 달암석을 채취하고 돌아옴으로써「아폴로」11호의 인기를 다소나마 줄여보겠다는 뜻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근련의 그 동안 실적으로 보아서 달에 연착하는 것이나, 달에서 이번「루나」16호처럼 둔자침이나 전자손 같은 것으로 달 토준을 파넣는 것 쯤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됐었다.
다만 탐사선이 침인로 달을 출발해서 지구로 귀환하는 것 만은 웬만큼 주자장치가 정교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 아닌가하고 전문가들은 추측했었다. 사실 「아폴로」11호나 「아폴로」 10호의 예를 봐서도 달착륙선 하반부를 발사 삼아 상반부로 달을 출발하는 일은 가장 위험한 고비로 여기기 까지 했었던 것이다. 이번「루나」16호는 아폴로 11호 선장 암스트롱이 『이름과는 딴판으로 매우 매말라 있군』했던 「풍요의 바다」에서 땅을 35CM정도 파가지고 암석을 채취해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예의 비밀주의에 의해 정확히 어느 지점에 무게 몇짜리 탐사선이 내려 얼마만큼의 달암석을 채취해 가지고 오느냐에 대해선 일체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우주계획을 감축시키고있는 이때 소련이 사상처음으로 전인으로 달암석읕 채춰해오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자주 경쟁에 새로운 보기를 줄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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