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꽃보다 할매' … 팔순 예인 셋 찾아 무대 올리는 진옥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진옥섭씨는 “내 책보다 더 중요한 건 관객 가슴 속 기록”이라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꽃보다 할배’가 인기라지만 전통공연 기획자 진옥섭(49·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씨에겐 ‘꽃보다 할매’다. 이 시대 마지막 해어화(解語花·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으로 기생의 은유)인 할매들을 찾아 군산, 동래, 대구를 오르내리느라 올 여름 더위가 뭔지도 몰랐다. “몇 달 뒤면 저승에 있을랑가도 모른디” 손을 내젓는 이 시대 예기(藝妓) 세 분과 출연 담판 짓는 일은 ‘예술가입네’ 어깨 힘주는 이들과의 계약보다 힘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한 길 사람 속이란 걸 알았어요. 황진이와 매창의 후예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때를 잘못 만나 숨어살아야 했던 이 분들이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자리인데 오죽하겠어요.”

 12일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해어화’ 무대는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떠돌며 전통 예인(藝人)들을 발굴해온 진씨가 평생 사무친 춤꾼과 소리꾼을 일으켜 세운 자리다. 민살이풀이춤의 전수자 장금도(85), 춤을 부르는 구음(口音)의 달인 유금선(82), 승무의 명인 권명화(79) 세 할매가 남몰래 가슴에 담아뒀던 한(恨)을 풀어놓는다. 손끝으로 춤이 뚝뚝 떨어지고 몸 속 깊은 곳에서 소리가 차오르는 판은 모든 치레를 버리고 몸으로만 올라선 저울과도 같다.

 “그분들 사무친 이야기는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켜켜이 묵힌 것입니다. 몸이 실패가 되어 딱 순간이 되면 분홍 비단실이 술술 풀려나와 관객을 휘감아요. 오로지 밥 빌어 먹으려 놀던 기술자라 무대는 숭고한 예술의전당이 아니라 나가서 돈 버는 데지요. 한데 그게 참 소름끼치게 치열해요.”

 진씨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극장은 손님이 꽉 찬 극장이다. 그는 공연기획을 한마디로 ‘손님 넣는 일’이라 했다. 객석은 공연의 성패를 가름한다. 그날의 연희자인 잽이가 노는 바로 그 순간에 같은 공간에 모인 관객 앞에서 새로운 것이 돋아나는 것, 그것이 진짜 전통이기 때문이다. ‘일 청중, 이 고수(鼓手), 삼 명창’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30년 이런 분들과 쩔어본 저로서는 저분들의 남은 시간과 우리의 지금 시간을 포개는 것이 으뜸 예술 창조이지요. 표를 못 팔면 피를 판다는 심정으로 일합니다.”

 진씨가 ‘대국민 보도자료’라 이름붙여 쓴 『노름마치』(문학동네)는 그가 만난 고수 중의 고수 18명을 훑어 내린 책이다. 그 예인 중 몇 분이 돌아가시자 ‘저승 프로’가 더 재미있다고 앞장서는 분도 있다니 “이 책의 문장과 함께 놀아봐라”는 저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는 “이 느낌 그대로 ‘풍류(風流)와 화류(花柳) 사이의 인문학’이란 제목의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딴따라의 괴수’라는 그의 별명이 오래 이어질 모양이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