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융정보] 은행≠원금보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3면

朴모(55.농업)씨는 지난해 1월 정기예금보다 수익률이 높을 수 있다는 은행 직원의 말을 듣고 혼합형 수익증권(주식투자 비중을 30% 이하로 하고 나머지는 채권 등에 투자하는 수익증권)에 6천만원을 투자했다.

최근 만기가 돼 돈을 찾으러 가보니 수익은 커녕 원금의 15% 가량 손실이 발생했다.

朴씨는 "은행 직원이 투자 원금을 손해볼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며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센터에 금융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이를 조사한 금감원은 "가입 전 은행 직원이 상품 설명을 했는지에 대해 은행측과 朴씨의 주장이 전혀 다르다"며 "그러나 거래통장에 원금손실 가능성을 알리는 문구가 인쇄돼 있기 때문에 朴씨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에서 판매하는 금전신탁.수익증권 등 실적 배당형 금융상품에 가입한 뒤 투자원금이 손실되자 금융분쟁조정을 신청한 사례가 지난해 21건에 달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실적 배당형 금융상품을 팔 때는 투자원금도 손해볼 수 있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하도록 직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라고 각 은행에 지시했다. 이와 함께 주식과 채권의 편입비율, 운용방법,현재 수익률과 과거 수익률 변동 추이 등도 안내할 것을 주문했다.

금감원 분쟁조정실 강성범 팀장은 "똑같은 상품도 증권사에서 판매하면 분쟁이 없는데 은행에서 팔 때는 말썽이 생긴다"며 "분쟁 발생시 고객이 불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은행 상품이라 하더라도 원금이 보전되는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분쟁 생기면 소비자가 불리=경북 김천시에 사는 金모(65)씨는 지난해 3월 은행 직원의 권유로 3천만원을 수익증권에 투자했다. 가입 후 며칠이 지나 확인을 해보니 수익률이 괜찮아 3천만원을 더 투자했다.

그런데 11월쯤 되자 김씨의 투자원금은 20% 가량 줄어 있었다. 金씨가 가입한 이후 주가가 곤두박질한 탓이다. 金씨는 "가입 때 원금을 손해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은행 직원이 알려주지 않았다"며 손실금액을 보전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상품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한 데다 자필서명까지 받았다며 金씨의 요구를 거절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尹모(44.여)씨는 은행에서 판매하는 단위금전신탁에 5천만원을 가입한 뒤 원금손실이 발생했다며 손실 보전을 요구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금전신탁은 원금의 주식편입비율이 50%로 수익증권의 70%보다 작지만 원금을 손해볼 수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감원이 다룬 실적 배당형 상품과 관련된 21건의 분쟁 신청 중 소비자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진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직원이 금융정보에 약한 소비자에게 상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 이를 입증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며 "그러나 통장에는 분명히 원금 손실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인쇄돼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 상품 가입 때 주의를=국민은행 신탁기획팀 관계자는 "은행.증권.보험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은행에서 판매하는 상품이라고 무조건 정기예금처럼 원금이 보전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은행들은 수익증권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신운용사가 만든 수익증권 상품을 가져와 팔기만 하면 추가 비용 지출이 없이 안전하게 수수료 수입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올해 수익증권 판매목표를 지난해(9조3천억원)의 배가 넘는 20조원으로 잡고 있다. 다른 은행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처럼 은행의 수익증권 판매가 늘면 원금손실에 따른 마찰도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1999년에도 은행들이 일제히 단위금전신탁을 취급하면서 고객 유치 경쟁을 벌였는데 이듬해 주가가 폭락해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은행 창구마다 고객과의 마찰 때문에 홍역을 치른 적이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의 수익증권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 고객에게 상품의 성격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는 직원들이 있게 마련"이라며 "그 경우에도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손실액을 보상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