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계 드러난 무상보육,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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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무상보육 재원 부담을 둘러싼 서울시와 중앙정부 간의 갈등이 일단 봉합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무상보육 예산 부족분을 충당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무상보육 대란을 피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재원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내년에도 무상보육을 둘러싼 논란은 재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서울시와 정부·여당 간에 벌어진 무상보육 논란이 정치적 대립으로 비화하면서 무상보육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박 시장의 지방채 발행 결정에 대해 “무상보육 예산 부족을 핑계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편을 가르는 정치 쇼”라며 서울시에 무상보육 공개토론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새누리당이) 집권여당으로서 최소한의 균형감각조차 잃고 있다”며 “영·유아 보육법을 통과시켜 중앙정부가 보육예산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무상보육 재원부담을 두고 서로 정치적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무상보육 대란은 정치권이 무상보육 대상을 올해부터 0~5세로 전면 확대키로 했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확실한 재원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정치권이 무상보육 확대를 공약하면서 재원부담의 배분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런데 중앙과 지방정부 모두 세수부족으로 재원마련이 어려워지다 보니 서로 보육비 부담을 떠넘기는 꼴불견을 연출한 것이다. 결국 무상보육 문제의 원인은 무리한 무상보육 범위 확대에 있는데도 근본 원인은 제쳐 둔 채 그 결과로 빚어진 재원부족의 책임 전가에만 급급하는 형국이다.

 이번 무상보육 논란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사실은 무상보육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권이 아무리 무상복지를 공약해도 결국 그 재원은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세금으로 조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그 부담은 지기 싫다는 것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더구나 그렇게 어렵사리 도입한 무상보육이 여성 고용률을 높이는 데 별 효과가 없을 뿐더러 공짜보육에 맡겨진 저소득층 영·유아의 발달을 저해해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주장대로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상보육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무상보육의 실효성과 재원조달의 현실성부터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되고 재원조달도 어렵다면 무상보육제도 자체를 뜯어고칠 일이지 재원부담 떠넘기기와 정치공세를 벌여 해결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정치권과 중앙정부, 서울시는 정치적 논란을 접고 무상보육제도를 전면 재검토하는 데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