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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는 선진국 수준, 환자 고통관리는 후진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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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암 치료는 선진국 수준, 말기 암환자에 대한 관리는 후진국 수준."

16~19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태평양 호스피스 학술대회'에서 밝혀진 한국의 암 관련 지표다.

국내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연간 6만여 명으로 사망 원인의 수위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국립암센터 등 국가적인 암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조기 암 검진 사업 등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암이 악화돼 육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이 극심해지는 말기 암환자는 거의 방치되고 있는 형편이다. 세계적인 암환자 통증 전문가인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데이비드 조랜슨 교수는 "말기 암환자 통증 관리에 가장 효과적인 의료용 마약 사용량이 한국은 국민 1인당 3.36㎎으로 세계 평균 사용량인 7.44㎎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또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덜 느끼고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호스피스의 경우 미국.일본은 물론 대만이나 말레이시아도 이미 제도화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범사업 단계다. 지난해 암 사망자 가운데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은 환자는 5.1%인 3266명에 불과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혈액종양내과)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암 사망자의 절반가량은 병원에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로 엄청난 비용을 쓰다가 죽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런 조치 없이 극심한 고통에 노출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80% 이상 통증으로 고통=말기암 환자는 약 80~90%가 심한 통증에 시달린다.

특히 유방암.전립선암 등이 뼈로 전이되거나 신경을 건드릴 경우 통증은 끔찍할 정도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암성 통증관리지침 권고안을 채택한 게 1982년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안에 한시적인 암환자 통증관리위원회를 만들고 권고지침 등을 마련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은 세계 평균의 절반도 안 된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다.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엄격한 관리 규정 때문에 거의 3차 의료기관에서만 취급하고 있는 데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양도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제도화는 표류 중=국립암센터가 최근 밝힌 암환자 의료비 분석 결과를 보면 말기인 4기 환자는 연간 평균 1852만원을 의료비로 부담해 1기 환자 773만원의 2.4배가량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 학술대회에 발표된 1990년대 중반의 한 미국 자료에 따르면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감하는 환자가 죽기 전 마지막 해에 쓰는 의료비는 일반 병원 치료를 받다 죽는 환자보다 2737달러(약 300만원)가량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스피스가 간병가족 등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는 훨씬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2003년부터 2년간 호스피스를 시범사업으로 진행했으나 관련법조차 아직 제정하지 못한 상태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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