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부담과 「포터」 발언|그 논리와 현실의 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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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은 과도한 긴장이나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보다 큰 몫의 방위부담을 질 수 있을 것이다.』 - 「포터」 주한미국대사의 발언(6일 재한미 상공회의소에서의 연설)은 조야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주한미군 감축문제가 제기된 후, 한국정부는 「선보장 후감축」의 기본입장에서 한창 한국군 현대화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이 때에 느닷없이 미대사가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은 어떤 흐름에서 나온 것이며 또 양국의 현안 교섭방향을 과연 시사하는 것일까? 「포터」 대사가 말하는 『자체부담의 증대』는 그 논리와 현실이 어떠한 것인지? 정치와 경제의 두 측면에서 발언의 표리를 헤쳐본다.

<정치적 측면>
「포터」 발언내용 자체는 「아시아」에서의 비미국화를 지향하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기본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외무부 당국자들은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를 내걸고 있는 미국의 정책방향에서 어긋나지 않는 내용이고 별다른 저의는 없는 것 같다』고 매우 신중한 분석을 하고 있다.
과거에도 미국은 한국측에 군원이관 문제를 제기해 오면서 『한국 안에서 조달할 수 있는 물품은 자체 예산으로 조달하고 거기서 「세이브」되는 군원「달러」로 새로운 장비를 도입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이번 「포터」 대사의 발언도 같은 취지의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해석만을 따른다면 「포터」 발언은 66년 「브라운」 각서에 의해 중단된 군원이관 문제를 새로이 제기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포터」 발언은 주한미군 감축을 둘러싼 한미 양국간의 교섭방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일 뿐 아니라 「포터」 대사가 현실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포터」 대사는 「닉슨·독트린」을 설명하면서 『한국에서의 새로운 미국의 목적을 반영하거나 새로운 목적의 탄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말하자면 의도에 변함이 없다는 것인데, 한국 정세의 현실적 판단에 착오가 있다면 그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여야의원, 실업계, 그리고 전문가들 사이에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 「현실」이란 「북괴의 위협」이다.
「포터」 대사는 한국의 부담증대가 가능하다는 근거로 경제발전의 성공을 들고 있으며, 특히 한국은 일본과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의 빠른 성장율을 보였다는 점과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방위지출비 비율을 들었다.
경제발전은 사실이지만 무력위협을 어느 정도로 받고 있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경제력과 직결되는 군사력의 비교적 고찰(북괴와의)을 전혀 않고 순수한 경제 내적인 것만을 가지고 방위문제를 이야기했다는데에 「포터」 논리에 맹점이 있는 것이다.
얼마전 미국의 평론가 「잭·앤더슨」씨는 『2만명의 미군을 빼낸다면 그건 일본이나 「유럽」에서 빼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국은 그의 허덕이는 경제를 위해서 미군감축으로 잃게 될 1억6천만「달러」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번과 같은 발언이 나오게 된 「포터」 대사나 미국무성 당국자의 한국정세를 보는 안목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포터」 대사는 72년에 한국이 부담할 수 있는 국방비의 수준과 76년의 그것도 상세히 언급했다. 한국이 경제개발에 주력하는 것도 바로 어느 시기에 가서의 자주국방을 위해서이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군을 감축하겠다는 시기가 한국이 잡고 있는 국방자주화의 시기와 거리가 있는 것이고 또 현재로부터 70년대 전반에 걸치는 그 거리가 가장 위험의 시기라는 현실판단에 미국이 어둡다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군사실무회담을 통해 감축에 앞선 한국군 현대화문제를 논의하는 외에 서울과 「워싱턴」에서 방위공약의 다짐을 위한 외교적 교섭을 벌이고 있다.
「포터」 대사의 이번 발언이 국무성과 맥락을 통한 것이라면 이 몇가닥 교섭에 쐐기를 박는 전략적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포터」 대사를 상대로 감축의 보장문제를 다루어야 할 정부로서는 이번 발언에서 드러난 몇가지 방향의 문제가 새로운 태세를 정립하는데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외교 「업저버」들의 견해이다.

<경제적 측면>
「포터」주한미국 대사의 연설내용은 「닉슨·독트린」에 따른 주한미군 및 군원 감축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자체 방위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제2차 5개년 계획이 무상 및 증여 형식의 경제원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처럼 3차 5개년 계획(72∼76년)은 방위력 유지면에서 자주력을 이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포터」 대사 발언은 한국의 자체방위부담이 증대할 것임을 암시하면서 3차 5개년 계획이 그러한 방향에서 미리 짜여지도록 촉구한 것이다.
그가 이처럼 자체방위의 제고를 역설한 것은 GNP 성장을 중심으로 한 한국경제 발전에 바탕을 둔 것인만큼 현시점에서 경제발전과 이에따른 국력증가에 대한 한미 양국의 올바른 평가가 절실히 요망된다는게 각계의 반응이다.
「포터」 대사는 국력이 급격히 신장되고 있음에도 한국은 국방비 지출이 GNP의 4.1%(69년)로 월남을 제외한 동남아 제국의 평균 5.3% 보다 낮으며 1인당 부담으로 봐도 9.5불에 불과하여 동「아시아」 제국의 13불보다 적다고 지적했다.
물론 피상적으로 볼 때 이러한 추정과 능력에 대한 평가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GNP 성장의 내용이나 그동안의 개발정책이 지녀온 문젯점 등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비록 고도성장을 나타내고 있지만 내용면에서 다른 나라와 많은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GNP에 대한 국방비 비율도 같아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유중국은 경제성장율이 10% 수준에서 거의 안정되다시피 되어 있으나 69년말 현재 외채는 3억3천8백만「달러」로 20억「달러」가 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지금까지 경제개발 과정에서 내자부족 때문에 투자재원의 40% 이상을 해외저축에 의존해 왔고 이런 유형의 개발정책이 수행되는 과정에서 20억불 이상의 외채를 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경제가 외자에 힘입어 고도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풀이되며 이 때문에 국내재원 중심으로 개발정책이 수행된 나라와는 국력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GNP에 대한 담세력에 있어서도 각 기업이 너무 부채의존형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고 최근 몇 년동안의 과중한 조세증가율로 볼 때 재정의 배분면에서 개발정책을 축소하지 않는 한 국방비의 대폭적인 추가염출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흔히 선진국과 비교하여 담세율이 낮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소득의 절대액을 기준하면 현재의 16.3%(70년도)가 결코 낮은 것만도 아니다.
미국의 지원원조가 금년을 마지막으로 종식되고 잉농물 원조 역시 유상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경제성장 목표를 낮춘 상태 아래서 우리나라는 재정 수요를 감당할 자금염출에 부심하고 있는 단계이고, 내년 예산의 세입 염출이 난항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충자금의 점감추세로 이미 66년부터 국방비 지출이 대충자금 세입을 「오버」해 왔고 금년의 재정자립도가 94.7%에 이르러 국방운영비에는 국내 부담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포터」 대사의 발언이 대충자금에 의한 보조 이외에 장비지원까지를 포함하는 것을 뜻한다면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미국의 한국 방위지원이 한국경제가 지닌 문젯점들을 올바르게 평가하지 않은 채 감축을 서두른다면 경제개발의 침체를 가져와 자주국방을 더디게 할 우려가 앞설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개발자원의 조성, 국제수지의 적자요인, 외채상환 부담의 누증 등에 대한 해결노력이 3차 5개년 계획기간 중에도 계속돼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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