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친환경 오이 재배로 성공가도 "정성 들인만큼 결실 주렁주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임성희 대성농장 대표가 자신의 비닐하우스에서 친환경 오이를 수확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천안 병천에서 친환경 오이 재배로 연간 1억5000여 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농사꾼이 있다. 임성희(56) 대성농장 대표가 그 주인공.

임 대표는 4463㎡(1350여 평) 대지, 총 11동의 하우스에서 연간 20여 t의 오이를 생산해내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29일 대성농장에서 임 대표를 만나 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오이는 다른 농산물보다 많은 정성이 필요합니다. 여름에는 매 시간마다 하우스에 물을 틀어서 일정온도를 맞춰줘야 하고 줄기가 많이 뻗어나는 시기인 7월 말부터 8월까지는 순이 한꺼번에 엉기기 때문에 자라는 줄기를 과감하게 제거해줘야 하죠. 그리고 오이는 덩굴식물의 특성상 세워둔 지지대 위로 여러 개의 줄기가 엉겨 붙어요. 이때 줄기가 너무 엉기면 햇빛에 가려져 오이 열매가 잘 자라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줄기도 부실해지기 때문에 세심한 정리가 필요하죠.”

 이날 오후 2시. 임 대표는 그의 부인과 함께 오이 수확에 한창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오이를 수확한 뒤 솎아내고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병천 오이는 천안의 대표적인 농산물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수확 철이 되면 주문이 밀려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고 임 대표는 말했다.

 “바쁘긴 하지만 오이 농사를 지으면서 행복을 느끼죠.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에요. 세심히 관리를 해주고 정성을 쏟는 만큼 좋은 열매를 선물해주기 때문이죠.”

임 대표가 오이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귀농 20년 만에 지역 대표 농사꾼으로

임 대표는 지난 1993년 대전에서 천안으로 귀농했다. 원래 그의 직업은 공작기계제작자였다. 중학교 때부터 기술을 익힌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철강소에 취업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른 살 중반까지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일에만 매진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농사에 눈을 뜨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동생 때문이었다.

 “제 동생이 이곳 천안 병천에서 오이 농사를 짓고 있었어요. 주말마다 일손을 거들어주기 위해 동생 농가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이 때문에 주말만 손꼽아 기다렸어요. 제 손길이 닿은 덩굴이 부쩍 자라 오이라는 열매를 선물해 줄때마다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때 결심했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오이 농사꾼’이 되겠다고.”

 주변인들은 만류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기술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에 귀농을 하겠다는 임 대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임 대표는 확고했다. 가족들을 대전에 두고 홀로 천안 병천으로 와 대지를 임대하고 하우스 시설을 꾸렸다. 그리고 오이 재배방법과 기술, 특성 등을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모아놨던 돈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대지를 임대한 뒤 소규모로 농사를 시작했죠. 하지만 일손을 거들며 어깨너머로 오이 농사를 배운 것 말고는 지식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여러 기관에서 농사 기술을 배웠죠.”

 그는 농사를 시작하며 농사와 관련된 공부도 함께 시작했다. 단국대학교에서 농어민 경영자 코스(3년)를 수료했으며 천안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유기농 농법’ 과정 등도 함께 수료했다. 그가 그동안 취득한 농사 관련 수료증만 해도 50여 장이라고 하니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대전에서 몇년간은 출퇴근을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수입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도전하기로 했죠. 가족들도 이런 저의 열정에 반해 함께 이곳으로 와 일손을 거들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가족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기도 해요.”

시련까지 이겨낸 그의 열정

여러 기관에서 교육을 수료한 그는 남들과는 다른 오이를 생산해내기 위해 유기농법으로 오이를 재배했다. 유기농법은 오이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좋아 소비자들에게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유기농법으로 오이를 생산해내기에는 여러 제약이 따랐다. 오이 덩굴에 병충해가 생겨 계속 농사를 실패하는 시련을 겪었던 것.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곧바로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해 오이를 재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기농법으로 오이를 재배하는 농가는 없었어요. 농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좋지만 계속 실패하니 고집을 꺾고 유기농법보다 한단계 낮은 친환경농법으로 오이를 재배했죠. 실패가 거듭되면 빨리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임 대표에게 운도 따랐다. 병천은 고지가 높은 지역이다 보니 오이를 생산하는데 있어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파악한 천안시는 2000년도부터 병천 오이를 ‘아우내 오이’라고 이름 붙이고 천안 특산품으로 지정했다. 그간 오이를 생산하던 농가들은 무리를 지어 작목반을 결성해 공동 이익을 창출해냈다. 유통 판로가 넓어지자 병천 지역에 오이 농가는 계속 늘었고 현재는 200여 곳 정도가 오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흙을 자식 다루 듯 해야 성공할 수 있다’

1993년 귀농 당시 소규모로 농사를 지었던 임 대표는 이제 어엿한 친환경 농사꾼으로 거듭났다. 매출이 증가하면 그 수익으로 대지를 넓혔고 시설 투자도 꾸준히 했다.

 이런 임 대표에게 농사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꼽아 달라고 하니 ‘흙’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흙은 어떤 농사를 짓던지 간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신에 대지에 있는 흙이 어떤 영양소를 갖고 있는지, 어떤 작물을 재배하면 이 흙에서 잘 자랄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는 1년에 두 번씩 토양정기검사를 빼놓지 않고 실시한다. 농업기술센터에 자신의 대지에 있는 흙을 채취해 검사를 의뢰하고 ‘토양시비처방서’를 받는다고 한다.

 그는 최근 귀농에 관심을 두는 이들에게도 뼈 있는 조언을 남겼다.

 “귀농을 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과의 단합, 그리고 지역적 특색을 알아야합니다. 만약 자신이 포도를 재배하고 싶다면 포도가 유명한 지역에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오이가 유명한 병천에서 사과를 재배한다고 하면 그 사과를 누가 사겠습니까. 귀농은 독불장군처럼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과 융합돼 함께 하는 것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