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도 작을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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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선 노무현 대통령의 새 정부가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인사추천위,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까지 참여한 가운데 정부 요직의 인선작업이 마무리되고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의 고조와 대미관계 악화가 맞물려 있는 심각한 현 상황 속에서도 정치권은 난국 타개를 위한 국론의 합일도 이루지 못한 채 대북 불법송금 의혹을 둘러싼 공방만 거듭하고 있다.

*** 국정 왜곡할 비대한 청와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가 작은 정부, 작은 정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은 오히려 그 몸집을 계속 불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의 전횡을 시정. 불식하고 책임총리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당선자는 청와대 안에 장.차관급을 늘리는가 하면 대통령 직속의 사정팀도 부활시키는 등 오히려 '큰 정부, 큰 정치'를 추구하는 모습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비대한 청와대는 결국 옥상옥이 되어 부처간 갈등, 정부기능 중첩, 국정 지연과 왜곡, 업무분담과 책임한계의 문제 등 온갖 비효율과 파행을 일으키기 십상이라는 것을 지난 역사에서도 보지 않았던가.

외국에서는 정치를 퍼블릭 서비스(public service), 즉 공공의 서비스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선진국일수록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거는 기대수익이 높지 않다.

훌륭한 정치가나 관료가 지도자로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정계나 관계의 자리가 다른 자리에 비해 훨씬 더 크고 높다고 여기지도 않고 또 그에 따르는 권력과 물질적인 반대급부를 크게 기대하거나 예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일찍부터 관(官)=권(權)=금(金)이라는 등식이 지배해온 한국의 현실에서는 아직도 정치나 관에 대한 기대수익은 높기만 하다. 기대수익뿐 아니라 그동안 한국의 정치에서는 실질수익도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인들은 지금까지 마흔두 명의 대통령을 '부리면서' 서비스를 받아온 데 비해 한국 국민들은 열 명도 안되는 대통령을 '섬겨'왔는데 그나마 하나같이 명예로운 퇴장을 하지 못했던 것도 재임 중에 챙겼던 지나친 정치수익(권력이든 금력이든) 때문이었다.

정치에 대한 높은 기대수익은 정치에 대한 만성적 초과수요를 빚게 된다. 한국에서는 대학교수도, 사업가도, 탤런트도, 시민운동가도, 운동권학생도, 재외동포도 조금만 이름을 날리게 되면 결국 정치지망생이 되기 일쑤다.

정치에 대한 수요가 이렇게 크니까 공급도 따라서 커지게 된다. 이때문인지 한국에는 국회의원의 숫자도 많고, 당수.당대표.당고문.최고위원 등 정치판 감투도 많고, 상설 지구당이 존재하고, 지구당대회나 전당대회 등이 수시로 열리고, 광역단체.기초단체의 장과 의원 등 수많은 정치 '일자리'를 놓고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청와대 안에만 실장 3명, 위원장 4명, 수석 5명, 보좌관 5명, 그리고 비서관 37명을 두기로 한 노무현 정부는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는 예의 힐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 정치지망 초과수요 낮춰야

교육부를 없애라는 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교육부총리를 두고 있는 것이 한국의 정치현실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했듯이 비대한 한국의 정치판은 각종 게이트니 스캔들이니 무슨 풍(風)이니 하는 사건들에 휘말려 바람 잘 날이 없다. 결국 온 나라와 국민이 늘 정치의 큰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을 주재(主宰)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레지던트(president)라는 말에 비해 우리의 대통령이란 말 자체가 아주 크고 권위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위압감도 이미 부담스러운데 대권이라는 엄청난 말까지 주권자들 앞에서 서슴없이 쓰여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치 또한 '작을수록 좋다'는 동서고금의 지혜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 또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국민에게 정치해봤자 '생기는 것' 없더라는 것을 철저히 알려주어야 한다. 정치는 뭔가를 얻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달아야 하겠다.

張錫晶(일리노이주립대 교수, 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