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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칼럼] 튜더의 정치 진단, 혜민의 처방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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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호 30면

‘이석기 사태’의 충격 탓인지 최근 읽은 두 권의 책이 느닷없이 결합돼 상념을 일으킨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의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요즘 마음이 쓰였던 몇몇 사안이 소재다. 우선은 출근길 버스에서 매일 듣던 그 광고. ‘…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상보육은 계속돼야 합니다’. 요즘은 더 들리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이 대중교통 수단을 사물화(私物化)했다고 여기던 차에 잘된 일인가 싶었는데 ‘광고 계약이 끝난 것일 뿐’이란 설명을 듣게 됐다. 앞으로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도 돈을 내서 대중교통수단에 ‘두 쪽 나도…’ 운운하며 광고한다면 어쩔 것인가.

 마음의 여진은 계속된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하듯 □□□를 넣어 ‘하늘이 두 쪽 나도 □□□를 위한 무상보육은 계속돼야 한다’를 패러디해 봤다. 1)하늘이 두 쪽 나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무상보육은…. 이건 당연히 옳다. 2)하늘이 두 쪽 나도 ‘부잣집 아이들을 위한’ 무상보육은…. 이건 아니다. 절충해서 3)하늘이 두 쪽 나도 ‘웬만한 집 아이들’을 위한 무상보육은…. 이것도 갸웃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많은 이들을 배려하지 않은 박 시장의 광고는 일방적이고 정파적인 광고였을 뿐이란 걸 그는 알까.

 최근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비판하며 ‘1인 독재’라는 표현을 썼다가 급히 거둬들인 사태도 생각해 온 주제다. 그게 해프닝 같지 않은 게 야권은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자주 ‘독재’라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사전의 뜻을 빌리면 독재는 ‘1인이 권력을 전횡하는 정치’다. 우리 국민이 지겹게 겪어 잘 아는 정치다.

 독재는 보통 ‘군사’ ‘피압박’ ‘탄압’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데 지금은 오히려 국회의 입법 횡포가 문제된다. 주말이면 도심이 툭하면 시위로 막힌다. 그런 나라의 정치를 독재라고 부를 수는 없다. 튜더는 자기 책에서 “한국인은 다른 아시아 국가 사람들보다 더 공개적으로 더 시끄럽게, 훨씬 더 많이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다”고 했다.

 세계적 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 EIU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지수는 2012년 전 세계 167개국 중 20위를 기록하며 미국·일본을 앞섰고 2011년엔 세계 22위였다. 부패와 소득불평등 같은 난제는 여전히 있지만 이를 ‘독재 프레임’에 욱여넣는 것은 무리다. 다시 ‘□□□는 독재자’의 빈칸에 이승만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의 이름을 넣어보자. 최근 대통령일수록 어울리지 않는다.

 야당이 요구하는 ‘청와대 회담’도 이래저래 마음이 가는 주제였다. ‘양자’냐 ‘5자’냐 형식을 놓고 다투는데 좀 한가해 보인다. ‘□□이 △△보다 중요하다’를 함수로 단순화해 보라. 박 대통령은 ‘민생이 국정원 개혁 문제보다 중요하다’이고 야당은 ‘국정원 개혁 문제가 민생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와 △△가 자리를 바꿔보면 그게 그건데 왜 그렇게 날 선 다툼을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31일 아침 8시, 서울광장의 민주당 천막당사로 가 봤다. 김한길 대표도 없고 당원 같은 이 몇몇이 앉아 있는 모습이 스산했다. 시간이 일러서 그럴 수도 있고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가 찬물을 끼얹은 탓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분위기에서 뭘 어떻게 더 할까 싶기도 하고, 청와대는 왜 양자회담을 그토록 거부하는지 아리송할 뿐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 튜더는 적절하게 진단하고 혜민 스님은 좋은 처방을 내려준다. 그는 ‘한국의 정치적 대립은 가히 극단적이며 갈등이 남북 대립보다 심하다’고 했다. 혜민 스님은 ‘잠시 멈추면 다 보인다’는 처방을 넘어 ‘내가 옳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같이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까지 덤으로 준다. 이보다 더 좋은 정치 진단과 처방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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