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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36년에 일어난 소위 2·26 사건은 명치 유신 후 일본의 가장 중대한 사건의 하나였다. 그보다 먼저 1931년9월18일에는 일본 군부가 「만주사변」을 일으켜서 봉천의 군벌 장학량을 몰아내고 무슨 핑계만 있으면 금방 북경까지라도 쳐들어 갈 기세를 보이었는데, 일본군의 청년 장교들 사이에는 정계와 재계에 대한 불만으로 점차 불온한 공기가 떠돌더니 1932년5월15일에는 필경 육해군의 청년 장교 17명이 수상 관저를 습격하여 「이누가이」 (태양의)수상을 사살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소위 5·15 건이라는 것이데 일본 육군 창설이래 처음 보는 일이었다.
2·26 건은 그보다도 더 큰 사건으로 그날 새벽 돌연 행동을 한 동경 제1사단의 「안또·데로소」(안등휘삼) 「노나까·시로」(야중사랑) 등 청년 장교에 인솔된 수천명의 군대는 기관총을 선두로 수상 관저를 위시하여 각처를 습격하였다. 그리하여 「오까다」(강전·해군 대장) 수상은 즉사하고 (나중에 딴사람이 대신 죽은 것이 판명되었다.) 「사이또」 (제등실) 내대신과 「다까하시」 (고교시청) 대장 대신 「스즈끼」(영목관태랑·해군 대장) 시 종무 관장 등 중신급의 사상자만 10여명에 달하였고 「아사히」 (조일) 신문사도 자유주의 신문이라고 하여 습격되었다.
청년 장교들의 궐기 취지서에는 『내외 정세가 위급한 이때에 원로, 중신, 재벌, 군벌, 관료 그리고 정당들의 세력 다툼과 사리 사욕에만 눈이 어두워 국가의 장래가 실로 염려되므로 국체 파괴의 원흉을 제거하여 대의를 바로잡고 국체를 옹호하는데 있다』라고 하여 그들의 궐기 목적을 천명하였다.
당시 전하는 말로는 일본의 군대는 농촌 출신이 많은데 농촌이 피폐해서 토박한 동북 지방에서는 해마다 딸자식을 팔아서 겨우 연명을 하는 농가가 적지 않았으므로 징병 제도로 군인이 된 농촌 출신의 사병들은 고향에 두고 온 본집 걱정 때문에 충실하게 군무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집에서 편지가 올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그것을 본 대대장 「안또」 대위는 젊은이의 정의감으로 부하들의 곤경을 구해주고자 여러 가지로 애를 썼으나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을 깨닫고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국가 개조의 혁명 운동 등을 일으킨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의 첫 착수로 우선 천황을 둘러싼 중신을 죽이게 된 것인데 이 때문에 눈 내리는 동경의 거리는 하루아침에 혁명의 도가니로 변하였으며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우쓰노미야」 (우도관) 제59연대장 영친왕이 육군 성으로부터 긴급 출동 명령을 받은 것은 바로 그러한 때었는데 동경에 있는 군대는 믿을 수가 없으므로 특히 동경에서 가장 가까운 지방의 군대를 필요로 했던 때문이다. 휘하 군대를 이끌고 동경에 도착한 영친왕은 동경의 중심지이며 궁성에서 가장 가까운 「나가다죠」(영전정) 한 모퉁이에서 반란 부대를 포위하고 만약 반란 부대가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고 저항 할 때에는 일거에 쳐부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만일 인가가 밀집해 있는 동경의 한 복판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죄 없는 일반 시민에까지 전화가 미칠 것이므로 되도록 이면 전투를 하지 않고 평화리에 반란 부대를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2·26 사건이 벌어지자 이에 당황한 일본 육군성에서는 부랴부랴 동경에 경비 사령부를 설치하고 「가시」 (향추) 중장으로 하여금 경비 사령관으로 삼아 우선 반란 부대를 회유하기에 전력을 경주한 결과, 「안또」 대위 등 반란 부대의 지도자들도 천황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일부 중신들을 제거한대도 혁명은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필경 반란 부대를 해산하는데 동의하게 되어 동경 시내에서의 전투만은 면하게 되었었다.
가시 경비 사령관은 『병사에게 고함』이라는 유명한 담화가 방송된 것은 바로 그때의 일이다.
그에 따라 영친왕의 제59연대는 다행히 총 한방 쏘지 않고 무사히 원대로 복귀했으나 반란 부대를 포위하고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했을 때 영친왕은 일본의 혁명을 제압하기 위하여 한국 출신의 자기가 직접 일본 군대를 지휘하게 된 야릇한 운명을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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