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와 깻잎장아찌-김갑순 여사댁<이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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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초여름부터 우리집 뜰한쪽에는 깻모가 수북이 자라오르기 시작한다. 내손으로 물주어 정결하게 키운 깻잎은 올여름내 그리고 가을 겨울까지 우리식구들에게 사랑받는 반찬이 된다.
본래 깻잎 반찬은 시어머님이 잘 만드셨었는데 나는 그 솜씨를 반도못물러받았지만 깻잎의 독특한 향기는 내 부족한 요리솜씨를 「커버」 해주고도 남는다.
깻잎반찬은 파·마늘·고추·후추·참기름으로 양념을 한 진간장을 물기를 없앤 깻잎 사이사이에 끼얹어 찌는데 나는 멸치를 한두마리씩 사이에 넣어 구수한 맛을 낸다.
이렇게 만들어 여름동안 계속해먹고 가을에는 누렇게된 잎까지 모두 따서 장아찌를 담았다가 겨우내 먹는다. 가을깻잎은 끓는 물에 빨리 데쳐서 쓴물을 뺀 후 항아리에 담고 양념장을 부어서 돌로 눌러둔다. 오래두고 먹을 것이므로 양념장은 조선간장을 쓰고 양념에 참기름과 파는 안 넣는다.
우리집 이교수님(서울문리대심리학교수 이의철씨)은 별로 식성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특별히 좋아하시는 몇몇음식에 대해서만은 까다롭기가 이를데 없는데 그중의 하나가 칼국수이다.
칼국수는 반죽을 묵직한 홍두깨로 미는 과정에서부터 기술을 필요로 한다. 홍두깨의 양쪽끝에만 힘을 주어 미는데도 반숙덩어리의 중간부분까지 슬슬 퍼져 방석만큼이나 널다란 밀가루판이 쪽 고른 두깨로 펼쳐진다. 얇게 밀어 가늘게 썰어야만 칼국수의 나긋나긋한 감칠맛이 솟는다.
그리고 다끓여낸 즉시 찬물을 조금 부어야 국수발이 오들오들하고 쉽게 퍼지지 않는다.
칼국수의 양년장은 특히 맛나야 하는데 풋고추·파·마늘·기름·고춧가루로 양념해서 만든다. 풋고추가 없는 겨울에는 된장에 넣었던 풋고추나 소금물에 삭혀두었던 풋고추를 다져넣는다.
우리집 이선생은 『옛날 중국 촉나라의 선비들은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집에서 담근 간장과 초와 풋고추를 술과 함께 내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었다』고 고사를 들려주며 풋고추를 송송 썰어넣은 초간장의 맛을 높이 평가하곤하는데 내 생각에도 여름철 일미는 이 세가지의맛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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