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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기고 반세기|체육회 창립 50주의 자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3일은 대한 체육회 창립 50주년을 맞는 날. 이날은 고난의 과거를 회고하는 날이며 영광의 미래를 기약하는 날이기도 하다. 1895년부터 이 나라에 상륙하기 시작한 근대경기는 1919년 삼·일 독립운동을 계기로 전기를 마련, 1920넌7월13일조선체육회가 역사적으로 창립됨으로써 근대 한국사 속의 체육사가 시작된 것이다.
체육회가 창립 된지 5년 만인 25년에는 우리 나라 「스포츠」의 요람지인 경성운동장(현 서울 운동장)이 완공, 그해에 게1회전 조선야구대회가 열러 전국체전의 효시를 이루기도 했다.
그후부터 야구·농구 등 구기 종목이 국제경기를 벌이더니 32년 김은배가 「올림픽」 「마라톤」에 당당 6위, 그리고 36년의 「베를린·올림픽」에서는 손기정이 세계 신기록으로 금 「매달」, 「스포츠·코리아」의 이름을 널리 밀쳤다.
그러나 이때에 손기정의 우승은 일장기 말살 사건을 불러 일으켰고 그후부터 「스포츠」도 일제의 격심한 탄압을 받게되었다.
일제에 대한 항쟁이 경기장으로까지 번지자 일상의 억압은 급기야 38년7월 조선 체육회 마저 해체하는 포악을 빚었고, 구기말살 정책이 전국을 휩쓸기도 했다.
드디어 해방, 조선 체육회가 재건되었으며 47년에는 「보스턴·마라톤」에서 연윤복이 당당 1위를 차지해 해방된 조국의 설레임 속에 벅찬 감격을 안겨주었다.
한국최초로 참가한 48년 「런던·올림픽」에는 총 67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 역도의 김성집과 「복싱」의 한수안이 동 「메달」을 얻었고 선수단의 귀국과 함께 체육회의 명칭을 국호에 따라 조선에서 대한으로 바꿨다.
조국의 해방과 함께 우리 나라 「스포츠」는 자못 활기를 띠었으나 북괴의 남침으로 또 다시 주춤-.
그러나 전화를 극복하고 일어선 「스포츠」한국은 54년 「마닐라」 「아시아」경기에서 7개, 58년 동경 「아시아」경기에서 11개의 금 「메달」로 「스포츠·코리아」를 「아시아」에 빚냈고 「복싱」의 송순천·정신조·지용주·「레슬링」이 의 장창선, 유도의 김의태 동은 「올림픽」에서 「한국의 얼」을 빛내준 이름이다.
아직도 손기정 이후 「올림픽」의 금 「메달리스트」가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 「스포츠」는 영욕의 50년을 거쳐 이제야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기대가 너무나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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