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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하하 호호' 렌터카 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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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헤드헌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옥제환(41)씨는 지난 3월 렌터카 업체를 찾았다. 기존에 타던 BMW520d를 처분하고 장기 렌터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늘 현금 일시불로 차를 구입해왔던 그는, 이번만큼은 계산기를 꼼꼼하게 두드렸다. 업황이 썩 좋지 않은 상황이라 이왕이면 비용을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3년 사용을 기준으로 아우디 A6의 일시불 구입, 할부 구입, 장기렌트 비용 등을 비교해보니 의외로 장기 렌트가 싸다는 결론이 나왔다. 무이자로 할부 구매를 할 때보다도 장기 렌트가 최소 300만원은 저렴했다. 그는 “렌터카인 걸 광고하는 것 같은 ‘허’자 번호판 대신 ‘하’자 번호판을 배정 받아 덤까지 챙긴 기분”이라고 말했다. 3월부터 ‘허’ 일색이던 렌터카 번호판이 ‘하’ ‘호’로 확대됐다.

 차량을 1년 이상 빌려 타는 장기 렌트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 계속된 경기 불황의 여파로 직접 구매보다 저렴한 장기 렌트를 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서다. 국내 렌트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kt금호렌터카에 따르면 장기 렌터카 계약 건수는 2009년 21만8460대에서 2012년에는 32만5334대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34만1072대로, 이미 지난해 전체 계약 건수를 넘어섰다. AJ렌터카도 법인 장기 렌터카 이용객은 매년 약 10%씩, 개인 장기 렌터카 고객은 2010년엔 전년보다 87.9%, 2011년에는 33%, 2012년엔 55.9%로 해마다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서 렌터카 회사의 매출 구조도 확 변했다. kt금호렌터카의 지난해 매출은 7121억원인데 80% 이상이 장기 렌터카 매출이다. 렌터카 회사를 여행지에서 며칠 빌려 타는 차를 중심으로 영업하는 회사로 여기면 큰 오해인 셈이다.

 장기 렌터카의 인기는 할부로 차를 살 때에 비해 취득·등록세 등 각종 세금과 보험료 등 차값 외에 숨어있는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차를 누가 쓰든 차량 소유자는 렌터카 회사이기 때문에 각종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차값이 7020만원(부가세 포함)인 아우디 A6를 3년간 장기 렌트 할 경우 할부로 차를 살 때보다 최소 326만원, 최대 1116만원이 덜 든다. 세부적으로 보면, 렌트나 할부구매 시 선납금은 차량 가격의 30%인 2106만원으로 동일하다. 월 렌털비는 158만원, 할부고객은 136만원(할부 금리 0% 적용 시)으로 렌트 고객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한다. 하지만 세금이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할부 구매자는 등록세(319만원), 취득세(127만원), 공채 매입비 등을 초기 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 또 매년 보험료와 자동차세 등도 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장기 렌트 고객은 3년간 7794만원을, 할부구매는 최소 8120만원, 최대 8910만원을 부담하게 된다. 렌터카 업체는 그랜저 HG300은 148만~490만원, 쏘나타는 42만~300만원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값이 비싼 차일수록 차액이 커지고, 소형차는 큰 이점이 없다. 개인 사업자가 사업용 차량으로 활용하면 렌트비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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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건이 다양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리스에 비해서도 장기 렌트가 유리한 점이 적지 않다. 리스는 보증금을 내고 금융회사 명의로 된 차량을 일정 기간 빌려서 이용하고 다시 반납하는 것이다. 대여 비용에 자동차세와 보험료가 포함되고, 약정거리를 초과해 운행하면 추가 이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장기 렌트는 주행거리 제한이 없다.

이런 흐름을 재빨리 낚아챈 곳은 수입차 업체들이다. kt금호렌터카의 지난해 수입차 장기 렌트 건수는 220건이었으나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 249건이 계약됐다. 차량도 BMW, 아우디 중심에서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도요타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수입차 업체들은 렌터카 회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차를 집중 공급하기도 한다. 업체 관계자는 “렌터카 회사는 차량을 대량 구매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팔 때보다 더 싼 가격에 차를 공급한다”고 말했다. 특정 회사 차만 전문적으로 장기 대여하는 회사도 생겼다. 지난 5월 BMW 딜러사인 도이치모터스와 계약해 BMW520d를 50여 대 계약한 비마이카가 대표적이다.

 법인 고객 일색이던 장기 렌트 시장에 개인 고객 비중이 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차종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생긴 결과다. 지난 2년간 법인 장기 렌터카 고객은 106% 늘었는데, 개인 고객은 206% 증가했다. 수입차는 이런 현상이 더 도드라진다. kt금호렌터카의 수입차 렌트는 개인(개인 사업자 포함) 비중이 31%에 달한다. AJ렌터카는 전체 장기 렌트 고객 중 개인 비중이 2007년 2%였으나 지난해 13%까지 늘었다. kt금호렌터카 관계자는 “최근에는 수입차를 타고 싶은데 운전에 자신이 없거나 차량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여성운전자와 초보운전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사고가 나더라도 보험료 할증과 사고 처리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렌터카 업체가 정기적으로 소모품을 교체·점검해주는 것도 여성·초보 운전자가 렌트에 먼저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수입차는 장기 렌트 개인고객 중 여성 비율이 32%에 달한다. 인식 변화도 한몫했다. 과거와 달리 ‘허’ 번호판이 대기업 임원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3월 정부가 급증하는 렌터카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허’ 번호판에 국한돼 있던 렌터카를 ‘하’와 ‘호’로 확대하면서 렌터카에 대한 선호도 덩달아 늘었다.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있다. 기존에 오랫동안 자동차보험을 들어왔다면 장기 렌터카 이용 시에는 보험 경력이 단절된다. 리스는 무사고에 따른 보험료 할인요율을 적용받을 수 있어 계약이 끝나고 차량을 인수하면 기존 보험 경력이 유지되지만 장기 렌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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