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년 못 버틴 대입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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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입(大入)제도가 또다시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대명사란 비판을 받게 됐다. 199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체제 도입 이후 올해 처음 시행되는 국어·수학·영어 수준별 시험(A·B형)이 내년부터 폐지 절차를 밟는다. 대입 핵심 정책이 시행된 지 한두 해 만에 사라지는 사례가 또 하나 추가되게 생겼다. 수준별 수능은 첫 시험을 치러보기 두 달여 전에 폐지 방침부터 나온 셈이다.

 교육부는 27일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현재 고2가 치르는 2015학년도 수능에서 영어, 중 3이 보는 2017학년도 수능에선 나머지 국어·수학 두 과목의 수준별 시험을 폐지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A·B형을 선택하는 학생 수 변화에 따른 점수 예측이 곤란해 대입 유불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수준별 수능’ 정책이 처음 발표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당시 정부는 “수준별 시험을 도입하면 수험생의 학습 부담이 작아지고 사교육비가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 정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이날 “(수준별 수능은) 처음 발표될 때부터 여러 문제 제기가 있었고, 고교와 대학 입장에서 시행상 어려움이 많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었다는 논리다.

 교육부는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의 수능 연계 백지화 방침도 밝혔다. NEAT의 수능 연계 방안은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나왔다. 당시 인수위 간사였던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2013학년도 입시부터 수능 영어 대신 국가영어능력시험을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었다. NEAT 개발엔 예산 393억원이 들어갔으며 지난해 6월 첫 시험이 치러졌다. 수능 연계 백지화 방침으로 NEAT는 시행 1년 만에 유명무실해졌다.

 내년 고1부터 적용되는 교과 성취평가제(절대평가)의 대입 연계도 2020학년도 이후로 늦춰질 전망이다.

 이번 대입 개편안은 교육정책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불충분한 의견수렴→탁상정책 마련→졸속 추진→제도 폐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육계에서 ‘교육오년지소계(敎育五年之小計)’란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오락가락 교육정책의 피해자는 결국 학생과 학부모다. 내년부터 고교에서 내신 성취평가제가 도입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자녀의 외국어고 입학을 준비해온 최형주(46·여)씨는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대학입시에서 외고도 내신이 불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1년 동안 준비했는데 정부의 말을 믿은 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총은 이날 논평에서 “수준별 수능의 점진적 폐지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시행 1년 만에 폐지를 결정한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정부에 따라 입시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문제에 대한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시안에 대해 두 달간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오는 10월 확정할 예정이다.

성시윤·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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