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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블랙홀 … 시장선 벌써 내년 2월 들어갈 집 거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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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7일 서울 잠실동 한 아파트 상가 내 부동산 중개업소에 거래 정보 전단이 붙어 있다. 대부분이 매매 정보이고 전세 정보는 드물게 섞여 있다. [박종근 기자]

“얼토당토 않게 비싼 전세도 나갑니다. 서울은 오죽하겠어요.”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주공아파트 단지 내 한 부동산중개업소. 유리창에 ‘주공 8단지 전세 62㎡ 1억5000만원’이라 적힌 A4용지 크기의 종이가 붙어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가격이다. 현재 주공 8단지 62㎡형의 매매가는 1억5000만원. 전세가가 매매가와 같은 것이다. 인근 주공2단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세가가 1억3000만원으로 매매가(1억5000만원)의 87%다. 최명종 공인중개사는 “요즘 전세가는 ‘들어올 테면 들어와보란 식’”이라며 “서울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나 신혼부부가 많이 찾는 소형 평수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세입자에게 전세난의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광명·평촌·의정부 등 수도권 인접지역으로 확산되며 기세를 더해 가고 있었다. 내년 전세를 미리 찾는 가수요나 전셋값이 집값에 육박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본지 기자 4명이 지난 한 주간 서울 및 수도권 일대 8개 권역을 돌며 직접 전셋집을 구해본 결과다.

잠실 99㎡ 전세 20일 새 4000만원 올라

 전세난의 진원지 서울에선 매물 품귀와 전셋값 상승의 악순환이 심화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의 리센츠나 엘스 99㎡형의 경우 최근 20일 사이에 전세가가 3000만~4000만원 올라 6억5000만~6억7000만원이 됐다. 학군 수요가 많은 목동의 경우 10월까지 전입신고가 완료돼야 학교 배정이 가능해 21주 연속 전셋값이 뛰었다. 목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82㎡형이 어제 4억5000만원에 나갔는데, 오늘은 4억8000만원에 나온다”며 “매물은 워낙 적고 세입자들은 들어오고 싶어 하니 집주인 마음대로 가격이 변한다”고 말했다.

 풍선효과는 서울 인접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3단지 52㎡형의 전세가는 1억500만원으로 매매가(1억1500만원)의 90% 수준이다. 6단지 을지마을 79㎡형도 매매가 2억2000만원에 전세가는 1억9000만원이지만 그나마 최근 두 달간 거래된 매물이 전혀 없다. 금정동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이정현씨는 “신혼부부들이 ‘서울에서 집 구하다 이쪽까지 밀려와서 ‘여기도 싸지 않네요’라며 돌아간다”고 전했다.

 중소형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분당 서현역 인근에선 ‘전세를 구하러 왔다’고 하기 무섭게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월세나 반전세가 아닌 매물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이 동네는 아파트 괜히 샀다 떨어질까 봐 불안한 신혼부부들이 여유자금이 부족해 외곽으로 밀려온 곳인데 여기도 6개월 사이에 전세가 2000만원 이상 올랐다”며 “그나마 집주인이 전세를 내놓는다고 찾아오면 기다리던 손님이 바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서 밀린 세입자들 수도권으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세를 구하는 시점도 앞당겨지고 있다. 이사하기 두세 달 전이 아니라 6~7개월 전부터 살 집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잠실 재건축 아파트단지의 경우 11월 전세 입주자들이 6월 초순부터 중개업소 문을 두드렸다. 잠실 매경공인중개사 김현미 대표는 “지금은 두 달 전부터 전세 구한다는 건 옛말이다. 올봄부터는 석 달, 지금은 네다섯 달 전부터 구해도 힘들다”며 “비수기 때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가을에는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집 못 구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평촌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보통 지금쯤이면 빨라야 올 연말에 들어가 살 집을 찾는 문의가 들어오는데 요즘은 내년 2월 전세 물건을 찾으러 온다”며 “정부가 전·월세 대책을 발표한다니 사정이 나아지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는 미약했다. 의정부에서 전셋집을 찾던 김모씨는 “서울 전셋값이 너무 올라 좀 싼 지역으로 옮기려 왔는데 여기도 만만치 않다”면서도 “떨어질 가능성이 큰 집을 사는 것보다는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전세를 드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명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은 집값이 오를 때까지 버티려 하고, 세입자는 전셋값이 부담되더라도 집값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같다”며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나 시장 전망이 너무 달라 정부의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글=신진·신혜원·장혁진·정진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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