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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에이즈'의 습격 … 서울의 허파 북한산이 떤다

중앙일보

입력

참나무가 병들고 있다. 전국적으로 한 해 30만 그루 안팎이 ‘참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참나무시듦병에 걸리고 이 중 20~30%가 말라 죽어간다. 유난히 긴 장마와 폭염이 이어진 올여름 서울 등 수도권 곳곳에서 병이 번지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비가 그친 서울 서초구 우면산. 푸른 산등성이 곳곳에 적갈색 잎의 나무들이 서 있었다. 때이른 단풍인가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시들어 죽은 나무였다. 높이 7~8m의 참나무가 한여름인데도 가지와 잎이 말라 있었다. 죽은 나무의 둥치에는 지름 1~3㎜의 작은 구멍이 수십 개씩 뚫려 있었다. 나무 주변 땅바닥에는 구멍에서 흘러나온 하얀 가루가 쌓여 있었다.

 20년 가까이 우면산을 오르고 있다는 김선경(72)씨는 “몇 년 전부터 참나무가 말라 죽는 게 보였는데, 올여름엔 산 전체에서 죽은 나무가 쉽게 눈에 띌 정도로 심해진 것 같다”며 “참나무시듦병이라는데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것 때문에 말이 많다”고 말했다.

10그루 중 7그루 피해 … 우면·청계산도 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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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서초구청 공원녹지과 김재무 주무관은 “광릉긴나무좀이란 해충이 나무에 구멍을 뚫고 자라면서 곰팡이를 옮기면 물과 양분이 올라가는 통로가 막혀 나무가 말라 죽게 된다”며 “일주일에 3~4번꼴로 구청에 민원이 들어와 죽은 나무를 베어내는 등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도 서초구청 직원 10여 명이 나와 전기톱으로 죽은 나무를 잘라내고 있었다. 나무를 1m 정도의 길이로 토막 내고 비닐을 씌운 뒤 약품을 뿌려 해충을 잡는 훈증 처리까지 했다. 한쪽에서는 참나무 둥치를 노란색 테이프로 둘둘 말아 붙이는 작업도 병행했다. ‘끈끈이 롤 트랩’이라고 하는 이 테이프는 해충이 들러붙도록 해 나무둥치 구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참나무시듦병은 우면산뿐만 아니라 인근 경부고속도로 서쪽 청계산(서초구 원지동)과 고속도로 동쪽 인릉산(서초구와 경기도 성남시 경계)까지 퍼진 상태다. 취재팀이 이날 고속도로를 따라 가다 보니 서울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청계산 자락 곳곳에서 적갈색으로 변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김 주무관은 “서초구 내에서 6000여 그루의 참나무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인력·예산 부족으로 아직 3000여 그루만 정리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시 “방재 예산 부족, 8억 긴급 요청”

서초구청 직원들이 23일 우면산에서 참나무시듦병을 막기 위해 테이프를 감고 있다. [김형수 기자]

 서초구뿐만 아니라 올여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숲에서도 시든 참나무들이 발견돼 최근 긴급 방제작업이 벌어졌고, 경기도 고양시 등에서도 참나무들이 병든 채 발견됐다. 서울시 산림관리팀 관계자는 “예산이 부족해 최근 산림청에 긴급방제 예산 8억원을 추가 요청했다”고 말했다.

 서울 북쪽 북한산국립공원도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4일 취재팀이 둘러본 하루재~백운대피소~용암문~도선사에 이르는 국립공원탐방로(약 4㎞) 주변에서만 참나무가 50그루 넘게 말라죽어 있었다. 백운대에서 내려다본 북한산성 쪽에도 짙은 갈색을 띤 참나무 50~60그루가 눈에 띄었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최병기 자연보전과장은 “올여름 중부지방에 장마가 오래 지속된 탓에 피해를 본 나무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11년 조사에서 북한산국립공원 내 참나무 270만 그루의 58.5%인 158만 그루가 병에 걸린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11만 그루는 말라 죽었고, 24만 그루는 상태가 심각했다.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한 올 상반기 잠정 집계에서는 전체의 69.3%인 187만 그루가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3년간 국립공원 내에서 방제가 진행된 나무는 11만 그루에 그쳤다.

방치 땐 도토리 줄어 숲 생태계 큰 타격

 산림청에 따르면 해마다 들쭉날쭉하지만 2011년 한 해 전국에서 새로 발생한 피해가 33만 그루에 이르렀고, 지난해에도 26만8000그루가 피해를 봤다. 국립공원 내 피해를 제외한 수치다. 발생지역은 2011년 전국 82개 시·군·구에서 지난해 91곳으로 늘어났다. 올해 피해 상황은 현재 집계가 진행 중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김경희 연구관은 “참나무시듦병은 참나무 속(屬)의 나무들 중에서도 주로 북방계 쪽인 신갈나무에서 발생하는데, 서울·경기도 등지의 대표적인 참나무 수종이 신갈나무”라며 “기후변화가 원인일 수 있지만 수령 30~40년 이상의 노쇠해진 참나무가 많아진 것도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은 “신갈나무는 백두대간과 주요 산지 상부의 우점종(優占種)으로 야생동물에게 도토리 등 먹이를 제공한다”며 “참나무시듦병을 방치할 경우 숲 생태계 생물 다양성 유지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올해 70억원의 예산으로 병든 참나무 11만5000그루를 베어내는 등 전국에서 36만5000여 그루를 대상으로 방제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산림청 윤병현 병충해과장은 “참나무시듦병 발생 지역에서는 리·동 단위로 담당자를 지정해 집중 관찰·방제를 맡기는 한편 환경부·국방부 등 관계부처와 공동 협력 방제도 적극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이승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광릉긴나무좀=2004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처음 발견된 참나무시듦병의 원인 균인 라팰리아(Raffaelea) 곰팡이를 옮기는 매개 곤충. 5월 말이면 수컷이 참나무에 구멍을 뚫으면서 페로몬(같은 종의 동물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 들어 있는 목재 배설물을 배출하면 암컷뿐만 아니라 다른 수컷까지 몰려든다. 암컷의 등판에는 5~11개의 균낭(곰팡이 주머니)이 있어 나무 구멍 속에 곰팡이를 뿌린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곰팡이를 먹으면서 자라고 이듬해 봄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된 다음 나무 구멍에서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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