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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실·독일의 과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며칠전에 어떤 독일 유머선집에서 만화보고 웃어버렸다. 『참 이건 우리 한국교수구나!』하면서 같이있는 분들에게 보여드렸다. 이 만화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과 그뒤에 그의 저고리를 잡는 아이 한 서너 명을 보여줬다. 이근삼씨의 『원고지』란 작품이 생각이 났다. 그의 가정을 살리기위해서 원고를 쓰고있는 교수의 생활! 사실 한국현실과 독일과거가 비슷한 점이 너무 많구나!
물론 이렇게 두 나라를 비교하면 실수가 되는 지도 모르겠다. 독일 과거의 현실과 이 나라의 현대 어려움을….
그런데 현대와서 서구에서 지성인의 생활이 나아졌고, 작가와 지성인의 생활수준이 올랐다고하면 우리도 이 나라에서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잘사는 나라에서도 같은 형편이 한때 존재했다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현대에 와서 다른 나라에서 이룬 상태에 여기도 똑같은 섭섭한 과정을 통하여 이룰 필요성이 어디 있을까?
그보다도 이 비유에서 다른 점이 나타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과거에서 지성인의 생활형편이 그랬다면서도 그 당시에는 현대 존재하는 문화계의 기초를 놓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현대에 와서 작가계나 비평가들이 발표하는 것이 그 당시의 기초없이 생각할 수 없다. 문학자들이 유망한 20∼30년대의 독일문단의 작가들이 발달시킨 주제와 작품형식을 소화해 가지고서야만 작품을 내게된다.
예를 들어서 현대의 독일연극을 브레히트없이 있을 수도 없고 왈서란 소설가가 튀빙겐대학에서 카프카를 깊이 연구하고 문학이론에 관한 논문도 발표하고 카프카의 영향을 보여주는 소설도 몇편을 냈다.
그런데 문학계만 아니고 그외에도 카바레도 등장하고 현대까지 이름난 연극계의 배우와 비평가가 그 당시에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그 당시에는 현대의 독일문학계가 생겼다고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고 독일문화계에 있어서 그때 처음에는 센터하나가 생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대전후에 와보니까 독일의 이 20∼30년대 문화계가 거의 고전화하였다. 하지만 다시 위에 말한 그 만화를 생각하자면 그 당시의 의지에서보다 우리가 만드는 고전시대의 광명스러운 빛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1차대전후의 사회의 불안에 그 서기가 가득 찼다. 미래의 선구자들의 대부분이 좋은 평가를 하나도 못받고 정부의 반대와 비평가들의 혹평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럼 몇년전까지 이 나라에서 살아왔던 외국인들이 서울을 한 큰 시골마을이라고 불렀으면 요즘 이런 인상이 너무 빨리 사라지고 한국의 정신생활의 센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전보다 연극에 관심이 생겨서 학생들이 주로 그 활동에 참여한다는 그 사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전보다 문학가들의 그룹이 사회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고 비명의 기술이 인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그전에 한국의 제1 마을이 참다운 문화적수도로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외국인으로서 바로 이 동안에 여기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서구보다 꽤 여기서 더 관심이 생길만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우리 눈앞에 새로운 것이 생기는 것이라고 할까? [알버트·슈미트(신부·외대강사·한국명 백재복·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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