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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마법의 숫자, 그들의 수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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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다음 달 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신지은(28·여)씨는 일주일 전 신혼집 거실에 놓을 LED TV를 인터넷으로 매장가보다 20%가량 저렴하게 샀다. 실제로 매장에서 보고 크기를 가늠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신혼집 평수만 알면 TV 사이즈를 쉽게 고를 수 있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신씨는 “어차피 TV는 매장에서 느끼는 크기와 집에 놓았을 때 체감하는 크기가 많이 다르다고 들었다”며 “보통 아파트 평수에 20을 더하면 된다고 해서 50인치 TV를 샀다”며 “매장에서 보고 산 것처럼 크기가 꼭 맞아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20’ 공식은 삼성전자에서 미국 영화텔레비전 기술자협회가 권장하는 TV 사이즈를 일반 소비자가 계산하기 쉽도록 고안해 낸 것이다. TV를 설치할 집이 84㎡(30평)형이면 ‘20’을 더해 50인치 내외의 TV를, 132㎡(40평)형이면 60인치대 TV를 고르라는 식이다. 권장 TV사이즈는 보통 예상 시청거리에 0.667을 곱해 계산하게 되는데, 한국에선 비슷한 평형대 아파트면 거실 크기 역시 대동소이한 점을 감안해 삼성전자에서 ‘한국형 공식’으로 쉽게 풀어낸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요즘 출시되는 TV는 베젤(화면 테두리)이 거의 없고 두께도 얇아 예전 브라운관TV보다 큰 제품을 놓아도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스마트TV 부문에서는 올 3월부터 본격적으로 고객들을 대상으로 ‘+20’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다. 효과도 좋다. 이 회사에서 그동안 신혼부부들이 가장 많이 찾던 40인치대 LED TV의 판매 비중은 올 2분기 41%로 지난해 같은 기간(53%) 대비 12%포인트 줄어든 반면, 50인치 이상 대형 TV의 판매 비중은 7.8%에서 26%로 크게 늘었다.

삼성 TV ‘+20’ 마케팅, 50인치 판매 늘어

 숫자 마케팅이 인기다. 기업들은 숫자를 사용하면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머릿속에도 오래 남는다는 장점을 내세워 마케팅에 활용 중이다. 미국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숫자마케팅은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가장 효과적으로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제품 사양이나 구조가 복잡한 전자업계에선 제품명에 붙는 숫자가 소비자들에게 성능을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한 역할을, 다양한 라인업을 가진 자동차업계에서는 직관적으로 사양을 알려주는 역할을 맡는다. 기업마다 특정 숫자를 미는 경우도 있다. 연세대 장대련(경영학과) 교수는 “제품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이미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숫자의 이미지에 연결시켜 표현해 훨씬 편하고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제품명 아래 다양한 라인업이 나오는 ‘시리즈’ 제품군에선 숫자로 이름을 붙이면 소비자들의 혼동을 줄이고 제품의 특징을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짝수보다는 홀수를 많이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홀수에는 시작을 의미하는 ‘1’이나 행운의 숫자 ‘7’ 등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숫자가 많은 반면, 짝수에는 아시아권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4’나 유럽권에서 악마를 의미하는 ‘6’ 등 부정적인 숫자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기아차 K3·K5·K7 같은 홀수가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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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시리즈 제품군에 쓰인 숫자는 커질수록 ‘프리미엄급’을 의미한다. 인텔의 프로세서 ‘코어 i’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코어 i3’는 보급형 제품으로 가격이 제일 저렴하며, ‘코어 i5’는 일반용, ‘코어 i7’은 최고가 제품으로 전문가용으로 분류된다. 기아자동차 역시 숫자 ‘3·5·7·9’를 활용해 제품명을 지었다. K 뒤에 붙은 숫자가 높을수록 프리미엄급 자동차로, K9이 가장 크고 비싼 대형 세단이다. 브라운 전기면도기 역시 숫자 ‘1·3’은 보급형으로, ‘5·7’은 프리미엄형으로 내놨다.

 제품명이 복잡한 카드회사들 역시 숫자를 활용해 카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삼성카드가 2011년 출시한 ‘숫자카드’ 시리즈는 대표 혜택 종류를 숫자와 연결시켜 만들었다. 가장 먼저 출시된 ‘3’ 카드의 경우 ‘영화·놀이공원·외식’이라는 세 가지 대표 혜택을 내세웠다. 이에 비해 ‘1’ 카드는 항공 마일리지나 높은 포인트 적립 등 프리미엄 혜택 딱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방식이다. 현대카드 역시 알파벳으로 이름을 정한 카드 시리즈에 숫자를 붙여 추가혜택이나 포인트 적립률을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데 쓰고 있다. 대표카드 브랜드인 ‘M시리즈’에서 분야별로 비슷한 혜택을 제공해도 ‘M2’ 카드보다는 ‘M3’가 포인트 적립이 훨씬 많이 되는 식이다.

‘비타500’ 등 특정 숫자로 효능 홍보도

 기업마다 의미 있는 숫자를 골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맥도날드는 ‘88 서울올림픽’ 때 한국에 처음 진출한 것을 기념해 올해 상반기부터 ‘1988버거’를 한국에서만 만들어 판매했다. 펩시콜라의 행운의 숫자는 ‘12939’다. 펩시의 알파벳 ‘PEPSI’를 뒤집어보면 ‘12939’와 닮았다는 것에 착안해 이를 활용한 광고를 만들고, 특정 매장에서 12939번째 고객에게 콜라를 증정하는 등의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동원 F&B는 자사의 헬스케어 제품 출시연도(2002년 7월)를 기념해 ‘7’ 할인 마케팅을 지난달 초부터 진행 중이다. 온라인 홈페이지 회원들에게 일곱 가지 영양제 제품을 최대 70% 할인한다. 배스킨라빈스는 ‘한 달 내내 다른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의미의 ‘31’을 내세워 광고와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8년부터 ‘31Day’ 프로모션을 진행해 매달 신제품을 내놓고, 매장마다 30여 가지의 다른 아이스크림을 준비해 판매한다.

 특정 숫자를 내세워 제품의 효능을 홍보하는 기업도 있다. 한국P&G는 에센스 화장품 ‘SKII 피테라에센스’의 광고 카피를 ‘14일의 기적’으로 잡아 성공한 경우다. 판매량이 치솟으며 인기를 끌자 한국P&G는 SKII의 남성용 피테라에센스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첫선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야쿠르트는 한국영양학회가 권장하는 성인 1일 채소 섭취량이 350g이란 점에 착안해 ‘350 하루야채’ 제품을 내놨다. 이 음료 하나만 마시면 간편하게 하루 섭취량을 모두 채울 수 있다는 의미다. 광동제약의 ‘비타500’은 음료 한 병에 비타민C가 500mg이 들어 있다는 의미를 쉽게 풀어낸 경우다. 남양유업의 ‘17차’도 역시 17가지 한방재료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차를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혜경 기자, 길기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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