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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BK21 사업, 발전적 변화 모색이 필요한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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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서울대 교수·물리학

지난주 교육부는 매년 2500억원을 투자해 석·박사급 고급인력양성을 지원하는 ‘BK21 플러스 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BK21 플러스 사업’은 14년 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시작된 ‘Brain Korea(두뇌한국) 21’의 3단계 사업이라 할 수 있는데, 사업이 종료되는 7년 후가 되면 BK사업이 20년 이상 시행되는 것으로 우리나라 정부의 교육정책치고는 대단히 장수하는 셈이다. 더구나 처음 BK21 사업이 시작됐을 때에는 일부 교수들의 반대가 심했는데, 이제는 대학마다 앞장서서 BK 사업단을 유치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사실 지난 14년간 BK사업은 한국 대학들의 연구경쟁력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교수들의 연구업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시작됐고, 대학원생들을 위한 재정지원이 제도화돼 석·박사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은 BK21 사업이 가져온 우리나라 대학의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단계를 거쳐 오면서도 기본 사업의 틀은 거의 변하지 않아 이제는 새 시대에 맞는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우선 정량적인 지표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점이 문제다. BK21 사업이 시작된 14년 전에는 논문을 쓰는 것 자체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논문의 양(量)보다는 질(質)을 중요시해야 할 때다. 물론 그동안 논문의 질을 평가하기 위한 노력으로 IF(Impact Factor)나 유사한 지표를 평가요소에 가미하기도 했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정량적 지표들은 개별 논문의 질을 평가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전 세계 유명 과학자들과 유력 학회들이 지난 5월 “연구평가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San Francisco Declaration on Research Assessment)”을 발표해 논문의 IF로 연구 수준을 평가하는 관행을 중단하도록 촉구했겠는가.

 이러한 정량적 지표에 대한 맹목적 의존은 어처구니없는 비교육적 현상을 낳기도 했다. 사업단이 제출한 논문 실적의 뻥튀기를 방지한다면서 경쟁하는 사업단끼리 서로 논문을 검증해 실수나 과장이 발견되면 고발하는 제도를 운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마다 대학원생들을 동원해 상대 사업단의 잘못을 캐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자기가 잘하기보다 남의 잘못이나 실수를 캐내어 이익을 보려고 하는 일이었으니 이게 어찌 교육적일 수 있겠는가. 이 제도로 실적 뻥튀기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학생교육의 근본을 망각했다는 점에서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은 제도였다.

 둘째는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학문분야별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용학문을 위주로 하는 공과대학에서는 논문도 중요하지만 특허나 산학협동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데, 지금은 논문의 비중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산학협력이 오히려 위축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제 학술지 논문 1편을 국내 학술지 논문의 3배 가치로 쳐주기 때문에, 한국의 문제를 연구해 국내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보다 외국 학계의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해 외국 학술지에 내는 것이 유행이다. 이러니 한국의 인문사회 학계가 우리의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한국 사회와 점점 유리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필생의 연구성과를 저술로 펴내도 논문 2편을 쓴 것으로밖에 평가받지 못한다. 그러니 세계, 아니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저서가 나올 리 없다.

 셋째는 학과(부)단위로 묶는 대규모 사업단 개념의 문제다. BK사업을 처음 시작했던 14년 전에는 전(前)근대적인 대학의 학사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이를 위해서는 제도개선을 이룰 수 있는 학과(부) 차원의 사업단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제도개선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게다가 대규모 사업단 간의 경쟁은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대학마다 필사적인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고, 심지어 교육과 연구에 무관하게 인위적으로 학과를 재편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보다는 소규모 연구그룹 간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학과(부)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통해 선진화를 촉진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행히 정부는 향후 발표될 대학원 질 제고방안 등을 반영해 2년 뒤에 ‘BK21 플러스 사업’을 전면 재평가하고 신규사업단을 선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과거 BK사업의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 정부의 교육철학을 담는 방안을 찾아 세계적 대학원 육성을 위한 새로운 틀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