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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양 독 정상회담 열리는 카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제2차 양독 정상회담이 21일 서독 카셀에서 열린다. 3월19일의 제1차 에르푸르트 회담 때의 합의에 따라 열리는 카셀 회담의 결과는 오는 6월9일로 예정된 베를린 4대국회담의 진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회담 때문에 인구21만3천의 카셀은 일약 세계적인 화제의 촛점이 되었다.
본래 본과 프랑크푸르트, 첼 등 제도시와 더불어 서독의 수도 후보물망에 올랐을 만큼 카셀은 유명한 고을이다.
에르푸르트와 카셀은 다같이 사회민주당의 강력한 조직기반이었다는 점에서 정상회담 장소로든 더 할 수없이 적합한 곳이다.
에르푸르트가 꽃의 도시라면 카셀은 아름다운 정원의 도시로 55년엔 국제조원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시 당국의 피페르트 대변인의 말대로 『백년동안의 잠에서 깨어난 공주』처럼 「붐·타운」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카셀의 유서 깊은 연혁은 서기 913년부터 기록되고 있다. 그후 카셀 성주가 청년들을 미국과 스웨덴에 용병으로 팔아 넘긴 사실이 있다.
1807년 나폴레옹 1세의 동생 제롬이 베스트팔리아 왕으로 여기와 살았고, 세당 전문에서 패배한 나폴레옹 3세가 이 성에서 열달 동안 유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후 다시 빌헬름 2세의 하계별궁, 대 러시아 양곡도입 교섭장소로 이용되었고, 힌덴부르크 장군은 여기서 프랑스로부터 철수한 근위병해산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은 유럽대륙 최초로 감자를 심었다는 긍지도 간직하고있다. 카셀의 오키스트러는 독일굴지의 권위를 자랑하며 그림 형제의 동화를 낳은 산지이기도하다.
그러나 1943년 영국의 대 공습으로 이 유서 깊은 고도는 순식간에 폐허로 화했다. 떨어진 폭탄만 무려19만개다. 전후에 카셀은 현대적인 새 도시로 면모를 일신했다.
이번 회담에 대비해 시 당국은 6천만 달러(15만 마르크)의 비용을 들었다.
회담장소인 쉴로스·호텔의 개수비만도 2백40만 달러가 들었다. 유명한 빌헬름스회에 성은 전세계에서 몰려들 기자들의 숙소로 사용된다. 약 1천5백명의 기자들을 위해 타이프라이터 4백대, 전화 1백50대, 기타 TV 스튜디오, 무전시설이 가설돼있다.
약 1천명의 정·사복경찰관들이 동원되어 경호를 한다지만 벌써부터 공산당과 국가 민주당 등 극렬분자의 데모 계획설이 나돌고 있다. 좌익은 동독승인요구를 극우는 이날여기다 서커스단의 공연을 마련해 회담을 방해(?)하리라는 소문이다. <독 슈테른 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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