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추렌히말의 빙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2차 대전 전야의 얘기다. 전쟁의 위기를 앞두고 미-일 양국의 외교교섭이 촌각을 다투듯 벌어졌었다.
이때 일본정부의 훈령을 담은 암호전보를 미정부가 도청하였다. 그러나 암호를 풀어 번역할 때의 오역으로 양국의 교섭은 완전히 결렬되고 말았다.
이렇게 전문 한 통의 오역 때문에 회피할 수 있었던 2차대전이 일어나게 됐다고 말하면서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성을 강조하는 사가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우발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건들도 깊이 따지고 보면 반드시 거기에는 필연적인 소인들이 있는 법이다.
협상에의 희망을 전쟁에의 결의로 그릇 받아들일 만큼 엄청난 오역을 번역관이 저질렀다는 것. 그리고 또 이런 과실을 미 정부의 수뇌자들이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받아 들였다는 것. 이것은 그럴만한 분위기가 양국의 교섭과정 속에서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에 양국사이가 교섭 초부터 그처럼 빡빡하지 않았다면 그런 과실은 곧 시정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역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우연성이란 무수한 필연성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우연성이 필연성을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겠다.
「히말리야」산맥의 처녀봉 「추렌히말」을 한국의 다섯 「알피니스트」들이 정복하였다.
「네팔」의 비경에 깎아 세운 듯이 하늘에 치솟은 해발 7천3백여m의 빙벽, 그 위에 태극기를 꽂게 된 것은 과연 우연적인 것일까, 필연적인 것이었을까?
한국인이「히말라야」에 도전했다는 것은 우선 한국을 비좁게 생각하여 해외로 폭발해 나가려는 젊음의「에너지」를 의미한다.
또한 그만한 여유를 우리가 갖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산이「스포츠」로 여겨지기는 1854년에 영국의「윌즈」가「알프스」의「베타·호른」등정에 성공한 때부터이다.
이런 1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서구의「알피니스트」들과 어깨를 겨루게된 우리는 이번 장거를 마음놓고 자랑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외원정을 앞두고 2년 전에 있었던 설악산에서의 참사와 같은 희생들이 밑받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