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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박사의 한방 건강 신호등] ⑨ 체질건강지수와 수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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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는 옛 금언이 있다. 질병은 잘못된 삶에 대한 옐로카드인 동시에 건강한 삶으로 되돌리는 신호등이기도 하다. 질병이 없다면 사람은 계속 잘못 살다가 일찍 죽는다.

그런데 그 신호등이 돌이킬 수 없는 큰 병일 때는 죽음의 신호등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사상의학을 창안한 조선 말 의학자 이제마는 ‘명맥실수’라는 것을 만들었다. 명맥이란 목숨을 이어 가는 근본 생명력이다. 명맥실수는 명맥에 따른 수명이다. 현재의 건강 수준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남은 수명을 예측하는 것이다. 큰 질병에 이르기 전에 가벼운 단계의 신호등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개념은 다음과 같다.

명맥은 크게 건강상태 4단계, 질병상태 4단계로 나뉜다. 먼저 질병상태는 외감·내상·뇌옥·위경 4단계의 명맥으로 분류한다. 외감은 외부 환경에 따라 종종 감기도 걸리고, 배탈도 나며, 잔병치레를 하는 단계다. 다만 아픈 정도가 가볍고, 아픈 상태가 1년 중 3개월을 넘지 않는다. 내상은 내부 장기가 손상을 입은 단계다. 아파서 자리에 눕거나 활동에 지장이 있는 기간이 1년 중 3개월에서 6개월 이내다. 뇌옥은 병이 몸속 깊이 자리를 잡아 몸이 감옥에 갇힌 상태다. 1년 중 건강한 기간보다 아픈 기간이 더 길다. 위경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거의 1년 내내 아픈 상태다.

64세 이전에는 생명력을 스스로 보충할 힘이 있기 때문에 명맥이 안 좋은 상태라도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64세가 지나면 명맥실수가 정해진다. 예를 들어 64세 때 명맥이 외감인 사람은 80세, 내상인 사람은 70세까지밖에 살 수 없다. 명맥이 뇌옥이나 위경인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남은 수명을 보장할 수 없다. 이처럼 64세 이전에 명맥을 잘 길러 놓아야 99세까지 팔팔하게 살 수 있다.

이제마는 명맥에 따른 건강 회복방법, 즉 생명력 보충법을 제시했다. 외감 수준에선 약은 필요 없고, 체질에 맞는 음식과 운동 등 체질건강법만 잘 지키면 손상된 생명력을 충전할 수 있다. 내상은 생활관리를 위주로 하되 보조적으로 약을 써야 한다. 뇌옥은 약을 위주로 치료하되 마음을 다스려야 하고, 위경은 약을 쓰지 않고 먼저 마음을 다스린다. 중병은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이제마의 관점이다.

지금까지 칼럼을 통해 안색·음성·체형·맥·땀·대변·피부상태 등이 체질별로 건강상태와 다르게 연관된다는 얘기를 해 왔다. 이외에 잘 때의 호흡 소리나 손발의 차고 더운 정도, 소변과 월경 등 많은 정보가 명맥을 판단하는 데 쓰인다. 한의학연구원은 이러한 요소를 종합해 ‘체질건강지수’를 개발했다. 물론 아직 초보 단계지만 100년 전 이제마가 구상한 명맥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정량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김종열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제마 프로젝트 연구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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