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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일본, 건강한 보수가 극우의 탈선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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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이다. 반동의 시대라 불릴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영혼(역사)에 상처를 주고, 신체(영토)의 일부를 떼어가려 한다면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일 경고 수위는 예상보다 낮았으며, 독도와 종군위안부 같은 민감한 표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박 대통령은 대신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와 공동의 미래를 열어 가는 데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정상적인 이웃 나라로 돌아오라는 주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한 달에 한 번꼴로 16개국을 순방했다. 동남아-미국-몽골-러시아-중동-미얀마-유럽 등이다. 하지만 이는 도넛외교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 중국이 빠졌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한·일, 중·일, 그리고 한·중·일 정상회담이 언제 열릴지 기약하기 힘들다. 일본 외교는 기로에 섰다. 일본은 그동안 동북아 3국이 정치·외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과 민간교류를 통해 평화와 안정을 일궈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의 ‘총(總)우경화’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의 자정 기능을 믿고 싶다. 일본 국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는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지 헌법을 개정하거나 과거사를 부인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또 일부 정치인들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마치 주변국들의 내정간섭에 대한 저항처럼 호도(糊塗)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에는 소수의 극우보다 건강한 보수세력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이들이 우경화의 탈선을 바로잡는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한다.

 일본은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 이후 지정학적 장점을 한껏 누렸다. 일본으로선 최근 30년간의 한국·중국의 부상이 불편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은 변화된 현실에 적응해야지, 이런 흐름을 부인하고 되돌리려 한다면 불행을 자초할 뿐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에는 아시아 중시와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 번갈아 득세해 왔다. 이제 일본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 한다. 정말 영원히 탈아입구할 것인지 묻고 싶다.